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미군주둔비용은 미국의 국방비다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고 있다. 그 덕분에 미국은 여러 가지 혜택들을 누리고 있다. 첫 번째가 인재와 학문이다. 세계 각국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키워놓은 인재가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모든 길은 미국으로 통한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을 위해 활약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학문적 업적은 고스란히 미국 차지다. 실리콘밸리엔 세계 각국에서 온 인재들이 대박을 꿈꾸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 인재를 배출한 나라 입장으로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인위적으로 막을 도리가 사실상 없다.

두 번째는 영어다. 영어는 세계어다. 영어를 아예 공용어로 채택하는 나라도 많다. 자국어를 고수하는 나라들도 영어 교육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세계를 상대로 무언가를 하자면 영어를 배우지 않고 되는 일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논문이라도 영어로 번역하지 않으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른 분야도 오십보백보다. 인터넷은 영어세계화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세 번째는 달러의 세뇨리지다. 관리통화제도 하에서 국가는 발권력을 가진다. 관리통화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은 이미 세계통화가 되어 있는 달러를 자국의 필요에 따라 큰 어려움 없이 찍어낼 수 있다. 물론 엄격한 내부통제기준이 존재하겠지만 달러 발권에 상응하는 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 통제기준은 없다. 미국에 외환위기가 올 확률은 영이다. 게다가 지나친 양적완화로 인한 인플레가 걱정된다면 취약한 나라의 옆구리를 찔러 외환위기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반칙을 쓸 개연성도 없지 않다.

어떤 나라에 외환위기 징후가 보이면 나라마다 외환보유고를 높이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적완화로 풀린 달러가 세계 각국의 국고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인플레가 잡힐 수 있다. 이러한 인플레 대책은 미국 이외의 나라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 외 군사무기와 스크린 등에서 부가적으로 누리는 미국의 혜택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이 누리는 무수한 혜택들의 근원적인 배경은 결국 막강한 군사력으로 귀결된다. 다소간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적나라한 명제다. 경제력도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웅변해 준다. 로마, 스페인, 영국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패권국의 역사는 군사력 이동 궤적이자 경제력 이동 경로다. 미국의 군사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이다. 미국은 인명과 물자를 희생하면서 참전하였지만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군사패권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남는 장사였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경제패권도 거머쥐었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이라고 달라질 이유가 없다. 미국이 세계경찰을 자처하면서 도처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각종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군사패권이나 자원 장악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군사패권을 포기하는 순간 경제패권도 넘어간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지만 그것을 순수한 미국의 자선으로 보기는 힘들다. 미국이 군사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군사기지를 제공한 희생과 국가안보의 일부 부담을 상호 교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우리가 얻은 이득은 군사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떡고물 내지 반사적 이득이라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미군 주둔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미군 주둔은 미국이 군사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세계전략의 일환이다.

우리나라가 얻는 이득은 미국의 이익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미군 주둔의 본질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미군주둔비용은 당연히 미국 부담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군사기지에 대한 지대를 미국에 청구해야 맞다.

최근 미국이 미군 주둔 목적과 그로 인한 거대한 이익 규모는 감안하지 않은 채, 우리나라의 작은 안보 혜택만 부각시켜 미군주둔비용을 우리나라에 덤터기 씌우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터무니없는 횡포에 다름 아니다.

미군 주둔이 군사패권 유지에 기여함으로써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강력한 수단임을 고려한다면 미국은 미군주둔비용을 우리나라에 막무가내 전가시키려는 책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부담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미군주둔비용의 부당한 전가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미군주둔비용은 미국의 국방비일 뿐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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