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 김수상

일본군이 동학 농민군을 죽일 때/ 농민군의 사지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묶인 사람의 정수리에/ 송진을 바른 소나무 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망치로 박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는데,/ 정수리에 박힌 나무못에 불이 붙으면/ 팡, 팡, 팡!/ 농민군들 머리 터지는 소리가/1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어디 동학군뿐이겠나/ 대구의 10월/ 제주의 4.3/ 광주의 5월/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죽인 나라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다// 일제에 빌붙고 군부와 독재에 아첨하며/ 온갖 영화를 누린 사람들은/ 아직까지 권력의 단맛에 취해/ 대대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빛바랜 창호지 같은 얼굴을 한 우리들은/ 창천(蒼天)의 하늘 아래 별로 부끄러움이 없다// (중략)/ 상생(相生)이 먼저가 아니고/ 해원(解寃)이 먼저다/ 원한을 풀어야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민족은 해묵은 낱말이 아니다/ 민족은 폐기되어야 할 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가/ 가을밤의 별처럼 자꾸 돋아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자꾸 되돌아봐야 한다/ 어머니가 동구 밖에서 우리를 보낸 뒤에도/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지켜보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무릎 꿇고 고백해야 한다// 영원한 이념은 없고/ 영원한 민족도 없어라/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은 같은 민족이어라/ 세상의 그늘 안으로/ 맑은 햇볕 한 줌 쥐고 달려오는 사람은 모두가 같은 민족이어라/ 선하고 맑은 마음만이 인간의 역사 앞에 오래 살아남아/ 별처럼 빛날 것이다// 민족은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불의에 항쟁하는 사람들/ 민족은 진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민족은 핏줄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 사랑으로 사랑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우리는 사랑공화국에서 법도 없이 푸른 맥박으로 사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미움은 가고 사랑은 오라!/ 거짓은 가고 진실이여 오라!

-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창립 22주년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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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지난해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시의 미덕과 참다운 도리를 다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근대 개항기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 일제강점기 친일, 군부독재 시대 광주의 5월까지 우리가 어설프게 유폐시킨 역사를 꼼꼼히 호명해 현재, 더 나아가 미래에 접목하여 시의 진실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제주 4.3사건이 71주기를 맞았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여순사건, 대구 10월 항쟁 등 아직도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정직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근현대사에서의 사건들이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말이 있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진실은 꼭 규명되어야겠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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