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지난 8일 별세했다. 그의 부고가 그가 대한항공 경영에서 퇴출당한 지 10여 일만에 나온 탓인지 이런저런 말들이 있다. 어쨌든 국내 항공, 운송 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조 회장은 3월27일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서 사내이사 연임 안이 부결됐다. 부인과 두 딸의 갑질 등 그간의 사정을 보면 그의 퇴진은 어느 정도 예상됐었지만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오너였기에 설마 그렇게까지 될까 하는 전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불명예 퇴진을 해야 했다.

하루 뒤인 3월28일에는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이 경영에서 자진해서 사퇴했다. 그는 정기주총을 하루 앞두고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아시아나항공이 회계부실로 감사보고서를 제때 내놓지 못해 주식거래가 일시 정지된 데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국내 양대 항공사 오너의 사실상 동시 퇴진은 그 배경에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주총 표 대결 패배와 자진 사퇴라는, 책임지는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경영 실책과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식 관련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절대 망하지 않을 기업을 골라 장기 투자해라.’ 그리고 그런 기업의 조건으로 여러 가지 요소를 꼽아 놨다. 주가수익비율, 배당률, 주당순자산가치, 기업문화, 독자적 비즈니스모델 등등.

그런데 국내 투자전문가들이 유독 강조하는 내용은 따로 있다. 경영자의 능력이 그것이다. 국내 기업의 내부 환경이 여전히 서구 선진국만큼 투명하지 않고 재벌로 통칭되는 대기업의 문화가 건재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투자 팁’이라고나 해야 할까.

조 회장의 퇴진과 함께 관심을 끈 것이 그 배경이 됐던 ‘스튜어드십 코드’ 였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불가침의 존재로 여겨지던 재벌 회장님을 쫓아낸 스튜어드십 코드. 이 기회에 확실하게 알아두자. 앞으로도 뉴스에 한 번씩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스튜어드십(Stewardship·집사의 직무)과 코드(code·준칙)를 조합한 용어인데, 2010년 영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제도이다. 현재 캐나다 홍콩 일본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6년 12월19일 도입돼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불린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기관투자자가 의결권을 행사할 때 지켜야 할 절차 및 기준을 말한다.

사실상 국내 최초라고 하는 대한항공의 스튜어드십 코드 실행.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측면이 더 평가받는 듯하다. 주주총회라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부적합한 경영자를 퇴출·퇴진시켰고, 이를 계기로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재벌 기업에서 벌어졌던 무분별한 황제경영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도 대체로 주주권 행사의 긍정적 측면으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부족한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이 낸 연금으로 민간영역인 기업의 경영권에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점에서 대체로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 같다. 그동안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최상위 투자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았고, 이사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들이 차지했다. 지금도 또한 그렇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외부평가는 시장에서 하고 내부평가는 주주들이 하는 게 정상적인 시스템 작동이라고 본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은 시장에서 도태되고 경영 실책이 있거나 부도덕한 경영진은 주주들이 책임을 묻는 게 정상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기업 경영환경은 여전히 경제외적인 요소가 관여하고 있고, 내부평가 시스템은 작동될 수 없는 게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실행에, 적잖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닌가 싶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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