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응답/ 안미옥

정면에서 찍은 거울 안에/ 아무도 없다//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 버티다가// 울었던/ 완벽한 여름//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슬픔 같은 건 다 망가져버렸으면 좋겠다// 어째서 침묵은 검고, 낮고 깊은 목소리일까/ 심해의 끝까지 가닿은 문 같다// 아직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면/ 생각이 났다

- 시집『온』 (창비, 2017)

..............................................

지난 주 영화 <생일>을 보았다. 살아있는 이는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는데 나는 3년 전 이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음력으로 3월3일 그러니까 영화를 본 다음날인 4월7일이었다. 죽은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흔히 제사를 지내지만 생일을 챙기는 것은 특별히 공적으로 의미 있는 사람의 탄신일을 기리는 경우 말고는 드문 일이다.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다. 아들 수호의 생일날, 그 부모와 남겨진 이들이 서로가 간직한 기억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세월호 참변을 당한 사람들은 4월16일 뭉뚱그려 일괄 추모해버리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기리고 추억하는 일은 생일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희생자 304명에게는 각각의 가족이 있고 사연이 있으며 기억이 존재한다. 수호의 죽음도 304개의 사건 가운데 하나이며 개별적인 추모와 애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생일>은 세월호 참사를 그린 첫 상업영화로 기획제작단계에서부터 부담감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솔직히 영화적 재미는 별로였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으며 너무 어둡거나 차갑지도 않았다.

진심을 오롯이 담기위해 최대한 미리 물기를 짜낸 듯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가 아니었다. 동정이나 분노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어떤 기억력은 슬픈 것에만 작동한다” 그때서야 눈물은 솟구친다.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눈물을 닦아낼 경우는 어머니에게 잘못을 저지를 때다. 어머니가 나로 인해 서운하시거나 아파하실 때이다. 영화의 어떤 장면으로 촉발된 눈물이 아니라 순전히 자가발전이었다. 영화에서의 공감이나 감동이기보다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 선창을 두드리며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 절규를 환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이 세상을 떠나던 날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지 못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아빠 정일을 연기한 설경구에게 약간의 감정 이입도 있었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공존하는 아버지의 복잡한 심경을 그는 감성적이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설경구는 극중 인물에 대한 몰입도가 뛰어난 배우임을 안다. 어떤 영화에서 다리를 저는 역을 하는데 신발에다 미리 병뚜껑 하나를 넣어둘 만큼 디테일이 대단한 연기자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주장도 없는 역을 잘 소화해냈고 마지막 딱 한번 오열이 함께 울게 했다.

영화는 “덜 말하는 방식으로 더 말하는” 안미옥의 시처럼 그렇게 전개되고 그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 국민 가운데 세월호 참사에서 무고한 외부자는 단 명도 없다. 참사를 실시간으로 목격했으며, 다함께 발을 동동 굴렸고 다함께 울었고 다 같이 분노했다.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인 참사 이후 5년이 흘렀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한다면 “이젠 마 됐다“ ”그마 해라!“가 아니라 진실에 대한 질의에 반드시 응답해야한다. 그때까지 눈물과 분노는 마르지 않을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