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장관을 임명한 뒤 “국민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하며, 특권층끼리 결탁 담합 공생해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당한 말씀이고 아주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님, 장관 지명 같은 정치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지 국민은 궁금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촛불이 이 정권을 세웠다고 촛불에 너무 기대지 마시라고 충고드리고 싶다. 왕조시대에도 그랬다. 백성은 바다와 같다.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촛불이 이 정권을 세웠다지만 그전 정권을 뒤집어엎은 것도 역시 촛불 아닌가.

우리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기대하고 믿었던 데 대한 실망감이 더해진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애정이나 나아가 존경심이 없었다면 섭섭하다거나 배신감 같은 것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고위공직자나 정치 지도자를 대하는 국민 눈높이는 그런 국민적 기대치의 반영이다. 국민의 정서는 위법성과 시효를 따지는 형사재판과는 다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기자 시절 글을 읽고는 그의 정의감과 역사의식에 경탄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재개발지역 상가 매입 의혹은 사건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어찌 군색하게 마누라 핑계를 대며 궁지를 모면하려 했는지 창피하고 부끄럽다. 사퇴했지만 야당에서는 수사해야 한다고 날을 세운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그 순간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기회를 노린 것 같아 괘씸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가 청와대를 대변하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도덕적으로 지난 정권과는 다를 것이라 기대한 문재인 정권의 속살을 들여다 본 듯 내가 부끄럽다.

비록 자진사퇴하긴 했지만 시세차익을 노려 갭 투자하고 고급아파트 분양권을 갖고 있던 최정호 전 국토부장관 후보자는 주택정책 주무부처 장관 후보자 지명을 수락한 자체가 뻔뻔하고 염치없었다. 임명을 철회했지만 아들의 호화 유학으로 구설수에 오른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국민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임명된 장관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신고한 재산에다가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국민의 시선을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임명받았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장관이나 헌재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하는 시스템에 있다. 그런 자리에 있으면서 낯 두껍게 이재에 귀를 열어놓는 지도자를 보는 국민들은 서글프다. 자신의 군색한 가정사나 비밀스런 프라이버시까지 까발려지면서도 추천한다고 덜렁 받아치는 모습이 더욱 실망스럽다. 나는 이런 결격사유가 있어 그런 자리에는 갈 수가 없다고 거절했어야 했다. 그런 염치를 아는 당당한 지도자는 없나.

프로야구 경기에서 홈런을 친 타자가 1루로 전력질주 하지 않고 자신이 친 타구를 여유 있게 바라보면 상대팀의 견제는 물론이고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받는다. 배트 플립을 하나의 세리머니쯤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여간 불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타자들은 다음 타석에서 투수로부터 스트라이크 대신 머리나 엉덩이에 강속구를 얻어맞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최근 미국 프로야구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아무리 경기라고는 하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적당히 즐기라는 말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이승엽 선수가 현역 시절 홈런을 치고도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세리머니를 하는 신사로 알려지면서 그의 인기 생명도 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은 일도 적당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인데 판사라고 주식 거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치인이나 국가지도자에게 재산까지 팔아 넣는 독립운동가가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재산증식에 무신경하라는 말도 아니다. 어떻게 불렸든 차치하고 재산이 많더라도 겸손해야지, 권세까지 다 가지려 하면 욕심이 된다. 그러니 적당해야지,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기대치를 의식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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