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 김수영

발행일 2019-04-18 15:55:1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유고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발표 직후 쓴 작품이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고 ‘혁명은 고독’한 것으로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다. 자유는 가만히 앉아 거저 얻어지는 수동적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 실천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노고지리의 비상을 통한 낭만적 자유에 일침을 가하면서,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 없이는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역설한다. 혁명이란 철저한 자기변혁을 위한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고, 실패에서 오는 좌절까지도 견뎌야하는 굳건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4·19를 맞아 지금의 학생들이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인터뷰하여 내보낸 적이 있다. 가슴에 깃발 같이 펄럭이는 열정으로 다가왔던 지난 역사의 장면들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리고 의미마저 퇴색해버린 이때, 그들의 대답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학교에선 국사가 안 배워도 그만인 과목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시험에 잘 나오지 않은 근현대사는 이해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 4·19혁명이 잊힌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와 지성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정신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4·19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먼 과거 속의 신화이며 박제였던 것이다.

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수많은 국민이 피를 흘리고 죽거나 부상당한 희생 위에서 4·19의 장엄한 민주혁명을 쟁취했음에도, 이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한 채 시시콜콜한 연예뉴스 따위에만 반응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물론 그때의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해갈되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또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4·19혁명은 역사상 초유의 성공한 주권행사였고, 민족사적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다. 지배와 피지배로 갈리고 억압과 굴종으로 나뉜 역사에서 피지배와 굴종만을 운명처럼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억압자들을 뒤엎어 버린 가슴 벅찬 감동의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랴.

4·19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의 정신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지난 촛불혁명도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가 꿈꾸는 자유와 정의의 푸른 하늘은 열리지 않았으리라. 그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 부활하지 않고서는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기도 하고 혁명의 완성을 위한 과정의 어려움과 긴장에 대한 부담도 이해된다. 그러나 당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농단세력 등 적폐 척결의 완성 없이 두루뭉술 선급하게 단 한 차례의 반성도 없었던 ‘박근혜 석방’ 운운은 역사적 미숙이고 퇴행이 될 수도 있다. 4·19정신의 방기이며 세월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처사의 다름 아니다. 혁명은 고독한 것이고 앞으로도 고독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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