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아야

신승남

중부본부 부장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았나봐요, 학교를 그만두려고 해요.”

어느 날, 그리 친하진 않지만 알고 지내던 사람이 걱정 어린 마음으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지랖인줄 알면서도 붙잡아 놓고 걱정이 뭐냐고 물었다.

조금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 하루 전 친구와 다투다 한 대 때렸는데 그만 형사사건이 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사건 배당 서류다. 상해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푹 떨군 아이 엄마는 한 숨을 쉬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용돈을 넉넉하게 줄 형편이 되지 않아 아들에게 늘 미안했는데 친구에게 빌려줘야 한다며 용돈을 가불해 달라는 아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 용돈을 가불한 아들은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고 아들 친구가 돈을 갚지 않고 자꾸 미루며 비아냥거려 한 대 때린 것이 친구의 고막을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어가던 아이 엄마는 전후사정이야 어떻든 폭력을 행사한 것 자체로 잘못이라고 했다.

화를 참지 못해 친구를 때린 아이를 혼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모자의 시련은 이때부터다.

아들 친구의 엄마가 아들을 상행혐의로 고소하며 합의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당장 합의를 하지 않으면 17살이 된 아들이 전과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항에 처했다.

놀라 달려간 경찰서에서 아들 친구의 엄마를 만났다.

이유야 어찌됐던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친구의 엄마라는 사람은 다짜고짜 합의금으로 500만 원을 달라고 종용했다는 것이다.

생각 좀 해보고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아들 친구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형편이 어려우니 300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사정했지만 500만 원이 아니면 절대 합의를 볼 수 없으며 합의가 안 되면 학교에 알려 학폭으로 처벌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합의금을 구할 수 없어 결국 아이의 사건은 검찰로 송치됐다.

아이는 그만 풀이 죽었다. 친구와 다툰 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것도 무서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엄마를 볼 면목이 없었다.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학폭이 열리면 자신이 나쁜 아이로 알려지고 친구는 물론, 선생님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합의가 되지 않자 피해 학생 엄마는 학교측에 학폭으로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중학교때 공부를 꽤 잘했지만 엄마의 짐을 덜기 위해 공고를 선택했던 아이는 결국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입학 성적이 좋아 가을쯤 학교에서 보내주는 해외 견학의 꿈도 접었다.

담임 선생님과 엄마가 자퇴만은 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여기까지가 아이 엄마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아이 엄마는 중간 중간 눈물을 훔쳤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이를 설득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봤다.

마침 경찰서에 청소년을 상담하고 선도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곳을 소개해주기로 했지만 아이는 거절했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폭행을 저지른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 때문에 죄인이 된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결국 자퇴했다.

특히 친구끼리 다툰 일을 사건으로 만들고 합의금을 요구하는 친구 엄마에게 더 이상 엄마와 자신이 휘둘리는 것이 싫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검정고시를 준비하겠다며 정규 고교과정을 포기했다.

필자가 폭력을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라는 아이들끼리 다툰 일을 형사사건으로 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맞은 아이의 부모 입장은 속도 상하고 화가 날만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보상받고 싶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생각을 못한 점은 아쉽다.

이 피해자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치료를 받고 멀쩡히 나았는데도 아들의 친구를 처벌해 달라고 경찰이며 학교에 요구했다고 한다.

어른답지 못했다.

아이들이 싸우면 말리고, 친하게 지내라고 다독이는게 어른의 할 일이다.

또 남의 자식보다 내 자식에게는 잘못이 없었는지 확인하고 교육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게 부모고 어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 또 다른 예비군이 있다고 한다. 엄마 부대다.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면 같이 군 생활하는 것 처럼 행동하고 간섭하는 엄마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자식에 대한 집착과 빗나간 사랑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내 자식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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