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개편은 개혁이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정부에서 술에 부과하는 세금 체계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핵심은 전 주종을 대상으로 종량세로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 주세 과세체계는 종가세 방식이다. 원가에 관리비, 이윤을 합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건데 이를 술의 용량 또는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종량세로 바꾸자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맡긴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는대로 이를 바탕으로 최종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7월쯤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하지만 수차례나 4월내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던 주세법 개정안이 다음 달로 연기됨에 따라 주류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주세개편 논의는 이미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에서 두 차례 다룬 이후 5개월째 중단되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국회 기재위 심기준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주세 개편은 작지만 확실한 개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다는 말일 테다. 맞는 말이다. 더 이상 주세 과세방법 전환을 늦출 수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주세개편은 곧 개혁이기 때문이다.

먼저 수입맥주와의 형평성 문제다. 현재의 종가세는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간의 세금 불균형 문제를 불러왔다. 국산 맥주는 출고원가에 유통비, 판매관리비, 이윤 등을 합친 금액을 최종가격으로 산정해 세금을 매긴다. 반면 수입맥주는 신고가+관세가 기준이다. 가격을 낮게 신고하면 주세도 낮아지기 때문에 국산맥주보다 세금이 훨씬 적게 붙고 있다. 4캔 1만원이 가능한 이유다. 더군다나 미국과 유럽에서 수입되는 맥주는 FTA(자유무역협정) 때문에 무관세이다 보니 수입맥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근본 원인이 됐다. 종량세로의 전환은 국산 맥주의 역차별을 해소해 줄 것으로 보인다.

주세개편이 확실한 개혁일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국내 주류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량세로 전환되면 수입맥주와 국산맥주 간 세 형평성이 이뤄져 상대적으로 국산맥주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수입하고 있는 해외맥주와 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수제맥주의 생산이 국내로 집중되면서 공장가동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맥주업계의 공장가동률은 30%대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수제맥주협회가 작년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주세가 종량세로 바뀌면 6천500억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와 일자리 7천500개 정도가 생길 것이라고 추정된다.

셋째, 종가세에서 종량세로의 주세 개편은 우리들의 술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다. 종가세는 결국 값싼 제품의 술 생산을 유도했다. 원가를 낮춰야 세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생산방식에 의한 소주가 아닌 녹색병에 담긴 희석식 소주와 고품질의 맛있는 맥주가 아닌 밋밋하면서 탄산함량이 많은 국산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문화가 성행했다.

종량세로의 전환은 이런 한국 술 문화의 변화를 앞당길 것이다. 이미 한국의 술 문화는 폭탄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 한잔’으로 바뀌고 있다. 종량세는 출고량과 알콜함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재료비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맛있으면서 다양한 술 생산이 이어지면서 ‘한 두잔을 마시더라도 맛있게’ 먹는 문화를 앞당길 것이다.

주세 개편이 개혁일 수밖에 없는 네 번째 이유는 전통주의 세계화도 꿈꿔볼 수 있어서다. 일제시대 때 종가세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이미 80년대에 종가세를 폐지했고 이후 고급 사케의 출시와 사케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역마다의 전통적 양조기법에 따라 만든 전통주가 활성화되면서 K-POP, K-FOOD에 이은 K-DRINK 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종량세로의 주세개편에 따라 국내맥주와 소규모 양조 수제맥주의 가격은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서민의 술인 소주값은 인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정부에서 가격 인상 없는 범위 내에서 개편안을 5월 초순 경 발표할 것이라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주세개편이 진정한 개혁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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