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누가 더 바보인가?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경제가 참 어렵다. 우리 경제가 ‘L’자형의 장기침체에 진입할 수도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경제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기사들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이 정도면 여기저기에서 불평불만들이 쏟아지고, 경기 대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통상적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지난주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하향 조정하면서 기준금리를 동결했을 때도 크게 논쟁거리가 되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논의가 그나마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싶은 생각조차 들 정도다. 경제성장에 대한 담론이 그나마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요즘 우리 주변에서 성장이라는 단어를 들어보기가 무척 힘들다. 더는 방치하기 힘든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치유해야 할 필요성이 크고, 이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용광로처럼 끓어 오르고 있어서 성장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기엔 웬만한 용기가 없어서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경제정책들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어찌 보면 통상 대중영합주의라고 불리는 포퓰리즘적 색채가 강하다고 하겠다.

포퓰리즘이 알려진 바와 같이 그 자체로 매우 나쁜 것은 아니다. 성장을 갈망하는 사회에서는 성장을 강조하는 정책을, 분배를 염원하는 사회에서는 분배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다만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한 조직이나 집단이 편향된 대중이나 증거 등을 등에 업고 권위주의화되어 갈 때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이성적 비판을 배척하고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신조를 관철해 나가는 도그마 즉 교조주의에 빠지게 되면 모두를 불행케 하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주술 또는 부두(voodoo) 경제학이라 한다. 주물숭배나 주술을 행하고 산 제물을 바치는 관습을 가진 부두교처럼 뭔가 대단한 일을 추진하는 것 같지만 정작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의미다.

좀 덜 성장하거나 좀 더 느리게 성장하면 어떤가.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등 고도성장이 남긴 많은 후유증을 치유할 수 있다면 중장기적으로 분명히 우리 경제는 더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좀 더 밝아질 것이며, 국민 모두는 더욱더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에는 곳곳에 수많은 위험한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잘 피해 가야만 한다. 우리 경제가 0.1%p만 덜 성장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숫자만 보면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2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고, 누군가는 실업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다.

통계청에서 매월 발표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두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시대는 지나갔다고들 한다. 하지만, 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양질의 일자리 공급을 늘려 안정적인 삶을 누릴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중장기적인 성과가 기대되기 때문에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감내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정책 부작용의 정도가 심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신뢰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다면, 누구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보완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를 무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주사위는 좀 더 신중하게 잘 던지라는 것이다. 이제 서로를 겨누던 창과 방패는 내려놓고, 식어가는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다시 데워 줄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마치 누가 더 바보(greater fool)인지 뜨거운 감자 돌리기를 하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어 있다는 케인즈의 비유가 생각난다. 당면한 경제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의미다. 성장의 동력이 약해지고, 많은 누군가가 경제적 현실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충분한 보완책이 지금 당장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가 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우제만 지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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