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掌篇) 2/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시집『시인학교』 (신현실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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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2017년11월 인사청문회 당시 모두발언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며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를 낭독한 바 있다. 그는 또 취임식과 한 로스쿨 특강에서 ‘장편2’를 인용하였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열린 마음으로 재판에 임하면서 약자가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고 차별받지 않도록 보살피겠다는 다짐을 시를 통해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우여곡절 끝에 새로 임명된 두 헌법재판관들에게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소중하게 아로새기고, 특히 약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잘 수행해주기를 바란다.

재판관 자신이 좋은 집안에서 많이 배우고 부유하며 건강한 외모를 지녔을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자칫 시에서의 국밥집 주인처럼 부나 지식, 외모의 정도를 가지고 재판을 할 개연성이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 없는 박애가 잘 발휘되지 않을 우려도 있는 것이다. 과거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편향’에 의해 정의롭지도 약자가 보호받지도 못하는 판검사들의 판결과 기소가 비일비재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고재판관으로서의 자질을 두루 갖춘 분들이라 믿기에 그런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소수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사회의 빈틈을 메워 소수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수의견’도 아끼지 말아야할 것이다. 아무쪼록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사유가 필요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위해 폭 넓은 인문학적 지식도 겸비하여야할 것이다. 이진성 헌재소장도 ‘장편 2’를 인용하면서 “우리에게는 헌재를 맡겨주신 국민의 눈물을 닦아드릴 의무가 있다”고 취임소감을 밝혔다.

일제강점기 때처럼 ‘주인영감’이 버럭 소리 지르며 ‘거지소녀와 거지장님 어버이’를 문전박대하는 광경은 더 이상 이 땅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가 태연히 ‘어버이의 생일’이라며 ‘10전짜리 두 개’를 고사리 손을 펴서 내보이는 눈물겹도록 애틋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충분히 보듬어야 한다. 비록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가지만 의연함을 잃지 않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함께 잡고 나아가야한다.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경제성장률이 좀 떨어진들 무슨 대수이랴.

가진 자는 좀 더 겸손하고 덜 가진 자는 좀 더 당당할 수 있어야 세상은 큰 틈이 없이 삐걱거리지 않고 돌아간다. 그리고 정부가 그 역할을 웬만큼은 해주어야 한다. 개인의 가치관 문제겠으나 지금껏 보면 대체로 보수주의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하고 자기 것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조금도 ‘손해’를 보려하지 않는다. 약자를 돌아보는 데 인색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분배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서 ‘따뜻한 보수’ ‘품격 있는 보수’란 말도 나왔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란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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