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4월, 잔인한 4월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4월의 마지막 날이다. 힘든 4월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질곡들이 녹아 있는 4월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이 좌충우돌하며 미래를 어둡게 색칠한 4월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4월3일이었다. 71년 전 제주도가 떠올랐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친일 경찰의 횡포를 규탄했다는 이유로 선량한 제주도민들까지 군·경에 의해 대량 학살된 사건이었다. 사실상 1947년 3월부터 시작되어 1954년까지 계속되었고, 목숨을 잃은 양민이 1만4천여 명에 달했다. 지금도 색깔론이 횡행하고 있으니 그때는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극은 살상이 멈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평생 그 한(恨)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했다. 빨갱이 자식, 빨갱이 아내라는 손가락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2014년에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올해 4월3일에야 군과 경찰이 처음으로 공식 유감을 표명했다. 제주도민들도 처음 위로를 받았다. 다행이 아닐 수 없지만, 71년 묵은 슬픔과 한이 너무 컸다.

4월11일이었다.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없이 끝나 다들 안타까워하던 중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계기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무 성과였다.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짙은 안개 속이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이었던 4월27일도 싱겁게 지나갔다. 이러다가 얼마 전까지 우리를 짓눌렀던 전쟁 공포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지고 있다.

닷새 지나 4월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였다. 이날만 되면 늘 먹먹하고 우울한데, 아직까지도 진상규명이 안됐다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더 힘든 일도 있었다. 몇몇 정치인이 유가족들에게 퍼부은 막말 때문이었다.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막장정치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절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4월 중순경이었다. 나라를 이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어졌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착잡한 일인데, 수준 이하의 정쟁은 더 가관이었다. 장외투쟁은 그렇다 쳐도 넘쳐난 색깔론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언제까지 색깔론에 기댈 것인가. 역사의 진전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은 또 한번 탄식해야 했다.

4월 내내 우리를 힘들게 한 뉴스가 또 하나 있다. 연예인들과 재벌가와 권력자들의 성 일탈과 마약 뉴스다. 정준영, 승리, 김학의, 윤중천, 강원도 별장, 버닝썬. 이제는 분노하기에도 지쳤다. 그동안 그들이 뿌려댄 더러운 돈과 벌거벗은 권력에 유린됐을 이들을 생각하면 참담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대체 이토록 난잡한 뉴스는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

그 와중에서 맞은 4월19일은 절망 가운데서 한줄기 위안과 희망을 주는 날이었다. 59년 전, 부패와 독재의 한 복판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낸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역사는 2월28일, 자랑스러운 대구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의 정신을 다시 생각함으로, 잔인한 4월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뒤 4월21일이었다. 부활절이었다. 2천년 전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의 사랑을 다짐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비극은 그 날도 피해가지 않았다. 이번엔 나라 밖 스리랑카에서였다. IS가 교회와 호텔 등을 동시 테러했고,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과 슬픔은 국경을 넘어 지구촌에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4월은 끝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25일부터였다.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막말과 고함은 기본이고 감금과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까지 갔다. 마치 전쟁터 같았다. 저런 국회가 한반도 평화 시대를 준비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한민국을 책임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할 수 없었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최소한의 예의와 역사의식도 없는 국회는, 4월 내내 이어진 피로감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그 4월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힘든 4월이었다. 참으로 잔인한 4월이었다. 달이 바뀐다고 우리의 정치와 사회가 달라질리 있겠나마는, 그래도 5월에는 기쁜 소식과 미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정의 달 5월을 하루 앞둔 날의 간절한 바람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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