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급할수록 돌아가라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회의원 총수를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에 배분한 후, 그 배분된 수에서 지역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배정하는 제도다. 석패율제를 조금 가미한 점이 특이하다. 정당이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 비례대표의 수를 확 늘려야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 기능을 한다. 225 : 75는 무의미하다.

다른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부분이다. 소속 정당의 선호도에 비해 경쟁력 있는 인재 풀이 많아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정당 선호도라는 제약에 발목 잡혀 비례대표 배정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그 반면에 이상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비현실적인 정당은 사이다 공약에 힘입어 지역구 당선자에 비해 비례대표 배정을 많이 받게 된다.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게 되는 경우, 자유한국당이 제일 불리하고 정의당이 가장 유리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배정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겠지만 성향과 지지층이 비슷한 우군, 정의당과 평화당이 이득을 보는 까닭에 총체적으로 이득을 본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에 주력하고 정의당 등은 정당 포퓰리즘을 통해 인기관리에 전력투구한다면 그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좌파 성향의 정당들이 지역구 선거에서 전략적 제휴를 한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이상으로 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에 중립적이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반대하고 나머지 정당들이 찬성하는 현 형국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찬성한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선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선거법에 대해 입을 닫고 비굴하게 따라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 대표라면 부당한 위협이나 겁박에 굴하지 않고 국민의 주권을 지켜내야 한다. 싸울만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의리이자 의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연계해서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다. 공수처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막아보자는 것을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렇지만 세상일이란 게 그 선의만으로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선의만 가지고 섣불리 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가진다면 공수처는 대통령의 수족이 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렇게 되면 공수처는 대통령이 수사대상기관을 장악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등이 수사대상에 들어있다.

대통령은 공수처를 통해 판사까지 손 볼 권한을 가진다. 대통령이 사법부마저 장악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삼권분립이 단숨에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당이 두 칼을 휘둘러 국회에서 과반수를 확보한다면 삼권을 틀어쥔 대통령은 무소불위가 된다. 장기집권과 독재로 가는 패스트트랙이다. 굳이 그 선의를 살리고 정치적 악용을 막으려면 좀 더 시간을 갖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제1야당에 주어 대통령의 검경 수사권 악용과 삼권장악을 견제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에서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직 공무원, 국회의원 등을 뺀 것도 문제다. 공수처 4당 합의안은 ‘반쪽짜리’ 수준으로 검토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장기집권과 독재로 가려한다는 의혹만 살 뿐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를 투톱으로 내세워 야당을 말살시키고 영구집권을 획책하려 한다는 주장이 황당한 기우라 하기엔 시나리오의 실현가능성이 너무 크다.

검경수사권 조정법안도 더 큰 이슈에 치여 가려져 있으나 가볍게 묻어 처리할 정도로 안이한 사안이 아니다. 검경의 현실여건을 신중히 고려하여야 할 민감한 사항이다. 법안을 처리하고 난 후 그 후유증에 시달리느니 심의 단계에서 좀 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다.

패스트트랙은 민생법안이 정쟁에 휘말려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이 제도가 정치적 법안의 졸속 날치기용으로 악용돼서는 결코 안 된다. 연계할 성질이 아닌 법안들을 한 꾸러미로 묶어 이해관계정당끼리 상호 뒷거래하려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야합이다. 그렇다고 극한대치는 그 해법이 아니다. 한걸음씩 물러서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길이 정도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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