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란한 오월에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다. “5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도 사랑한다.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는다. 권태로운 사랑 속에서도, 가난하고 담담한 살림 속에서도 우유와 같은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은 희열을 맛본다.”라고 이어령은 쓰고 있다. 5월은 가만히 있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달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월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달이다. “산과 들은 차츰 그 호사스러운 꽃의 장막을 거두고 신선한 녹음을 펼치는 오월이 왔다. 감정에서 의지로, 낭만에서 실제로, 그리고 환영에서 뚜렷한 정체를 응시해도 좋은 오월이 왔다. 달콤한 꽃의 향기에 취하여 있기에는 녹음의 도전이 너무도 생생하다.” 김말봉의 ‘화려한 지옥’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렇다. 일장춘몽 같았던 화려한 벚꽃과 봄꽃의 축제는 지나갔다. 이제 만물은 치열한 여름과 가을의 결실을 대비하고 있다.

우리 정치판을 바라본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학식이 있거나 성품이 바른 자들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다.”라고 일찍이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가들을 혹평했다. 사시사철 당리당략과 당파적 이해관계만 따지는 우리 정치판을 본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간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애써 정치에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완전히 무관심해질 수 없는 것 또한 정치다. “정치는 불을 대하듯이 할 일이다.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선 안 되고, 동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멀리 가선 안 된다.”라고 한 안티스티네스의 말이 유난히 와 닿는 요즘이다.

이기고 누르고 장악하여 내가 하나 더, 한 표라도 더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모든 것은 제로섬의 관계로만 존재한다. 한국 정치는 도박이며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도박은 얼핏 보면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다. 도박이 끝난 뒤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의 돈을 합치면 처음 시작할 때의 판돈과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도박꾼이 자기들끼리는 치고받고 싸우면서 그 판을 즐기겠지만 그들의 가족이 겪는 고통이나 늘어나는 노름빚은 결국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도박은 제로섬이 아니고, 결국은 마이너스섬 게임이 된다.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며 표류하면 국가 모든 것들이 흔들리며 좌표를 상실하게 된다. 국회 의석 수는 누가 더 가지든 변화가 없는 제로섬 게임이지만, 정치 혼란으로 인한 경제 불안과 생산성 저하는 국민 전체를 위한 판돈이 줄어들게 한다. 정치가 국민을, 기업을 신나게 해야 그 결과는 플러스섬 게임이 된다.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은 모든 영역에서 탈취와 지배, 승자독식의 원리를 공생의 원리로 바꾸는 게 대세다. 사람과 자연, 정치와 기업 등 모든 것들은 유기적인 순환구조 속에 연결되어 있고, 상호의존적인 망 속에서 공존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이 타자의 삶과 분리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칼을 들이대면 그 칼이 곧장 나의 목으로 되돌아온다는 순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뺏고 빼앗기는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부양하고 지원하는 관계로 행위 양식 자체를 전환시켜야 한다. 이 관계에서는 경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의 방식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는 한반도 정세와 사회·경제적 위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동자승의 초롱초롱하고 해맑은 눈동자를 바라본다. 까까머리 동자승의 머리가 5월의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잎처럼 광채가 난다. 그들의 지순한 눈과 천진난만한 표정, 장난기 가득한 사심 없는 미소 속에서 불성과 온갖 가능성을 다 볼 수 있다. 저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잠시만 바라봐도 탐욕에 찌든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정치권은 대오각성하여 국민을 분노하게 하고 지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달 오월에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며 좀 더 행복하고 싶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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