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안상학

흰 꽃 많은 오월/ 이팝나무, 불두화, 아카시아, 찔레꽃/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이런 오월을/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불렀습니다// 푸르기만 하던 나의 오월도/ 살면서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로 바뀌었습니다// 하필 5·18 기념일에 돌아가신 아버지/ 임병호, 박영근 시인, 권정생, 박경리 선생,/ 달력에 치는 동그라미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올해는 또 한사람이 돌아가셨습니다/ 5·18은 이제 어느 달력에나 있으니 안심하지만/ 내년 달력이 생기면/ 5월 23일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려야겠습니다// 오래 지날수록 더 그리워질 사람들의 오월/ 흰 꽃송이 더미더미 조문하는 오월입니다

ㅡ 시집『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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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산천초목 신록이 우거지고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는 그 자체로도 빛나는 계절이다. 사람의 인생도 늘 5월만 같기를 소망하면서 5월이면 몸과 마음이 절로 들썩이고 스멀거린다.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갖가지 사랑의 이름으로 각종 기념일이 몰려있다. 5월1일 노동절을 필두로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노래 소리 드높은 어린이날, 뒤이어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정의 날, 부부의 날...석가탄신일에다가 가톨릭에선 성모의 달, 장미가 그렇듯 신부가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계절도 5월이다. 꽃의 수요가 가장 많은 달이면서 이래저래 돈 나가는 일이 잦은 달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소란스러우면서도 숙연해지는 달이기도 하다. 5·16이야 건너뛰면 그만이지만 5·18은 아무리 해가 가도 잊지 못한다. 서로 위하고 아끼면서 사랑의 도리를 일깨우는 달이면서도 도시 한복판에서부터 울렸던 함성과 총성의 그날을 어찌 잊으랴. 먼저 죽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차오르면서 속속들이 만면에 웃음이고 희색일 수만은 없다.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그들 둘레의 자연 생태, 풍경의 변화 혹은 마음과 영혼이 움직이는 무늬에 따라 그달의 이름을 붙였다. 아라파호족은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불렀다. 시인은 이러한 오월에 또 한 사람의 죽은 자를 오래도록 그리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을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세상에 물들거나 영합하지 않고 속세에 너무 빠져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진실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도 누구나가 생각하더라도 옳다고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지식인이었다.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구에서도 콩인’ 반칙이 없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억울한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무현의 꿈이었다. 그는 그 꿈을 다 펴지 못하고, 우리는 꿈의 실현을 돕지 못했다.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지역균형발전의 실종과 가치 부재의 삶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시시때때로 그를 떠올렸다. 노무현은 목숨을 버렸지만 영원한 민심을 얻었고, 이명박은 권력을 끝까지 행사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도 없지 않겠으나 우리가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까닭도 그러하리라. 인간의 자존심이 활짝 피는 사회, 원칙이 승리하고 불의가 망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노무현 가치공동체의 구성원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계절 오월에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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