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어서

신호가 바뀌어 출발하려는데 맞은편에서 교통신호를 무시한 오토바이가 앞으로 휙 지나간다. 아찔하다. 욕 할 시간도 없다. 한 숨 고르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저렇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을까. 저 용감성은 그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한 번이라도 더 배달해서 일당을 올리려는 처절한 몸부림일까.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무색하게 대구시내 한복판에서도 수시로 목도하는 삶의 현장에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부산의 한 시의원이 환경미화원 자격을 낮잡아 수준에 비해 급여가 너무 많다고 비난했다가 황급히 사과했다. 그는 환경미화원이 “대학을 졸업하거나 치열한 시험을 치르고 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과거에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단순 노동력만 필요로 하는 직종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신의 직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아는 청소원은 ‘열악한 급여를 받고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일하는 사회적 약자’였고 그러니 당연히 보수도 적어야 하는데 그가 알고 보니 자신들보다 많았다는 거다. 그가 구체적으로 들이댄 18년차 환경미화원의 연봉은 6500만원이었고 그것은 ‘자신들 시의원보다 100만원 더 많다’고 공개했다.

미화원들이 점잖게 문제 삼지 않아서 그 정도에서 끝날 수 있었지 그야말로 레밍 발언보다 더 치졸하고 옹색하다. 왜 환경미화원은 시의원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으면 안 되는가? 대한민국에서 유독 부산시 시의원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많은 월급을 받아야 하는가?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시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출발했던 기억을 그는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생각이며 전근대적 사상의 소유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시청 노조원이 “30여 년을 길에서 평생 주6일 밤낮, 주말 없이 새벽 근무를 하는 환경미화원분들이 그렇게 세금을 축내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이시나”라는 비판과 함께 시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진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정치인들의 이런 의식은 부산시의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데 있다. 대구에서도 직업여성을 향해 비인격적이고 가당찮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구의원이 있었다. 그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들어가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지원 조례 제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2000만원을 받고 다음에 다시 성매매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육체를 생업의 수단으로 삼는 인생을 향해 인격 비하성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사고도 남음이 있다. 여성단체가 항의를 하고 당에서도 당원의 품위 유지 의무와 여성 비하에 대해 징계했다.

지방의원들의 역할과 보수 논란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다루시는 국회의원의 활약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지금 선거법 개정을 놓고 패스트 트랙 논란을 벌이는 정당 간 정쟁을 보노라면 정말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인지, 자기들 밥그릇 지키기 투쟁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연간 1억 원이 넘는 세비와 온갖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2천여만 명 중 월 100만 원도 못 받는 사람이 10.2%나 됐고 100만원 이상 200만 원을 받는 근로자는 27.1%였다고 통계청이 최근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기준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 보고서에서다.

목숨을 걸고 교통신호를 위반해가며 심부름을 하는 퀵맨이나 새벽부터 거리 청소에 나서는 환경미화원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구조가 근대 사회에서 반드시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편한 일을 하는 것이 돈도 많이 받고 사회적 존경과 보수까지 챙기는 직업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젠가 노점상을 단속하는 공무원에게 “당장 칼 들고 강도짓 하지 않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며 거칠게 항의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 아직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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