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발행일 2019-05-06 16:24:5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중략)/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유고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11년 전 어머니에게 이 시를 읽어드렸다. “엄마보다 5개월쯤 언니뻘인 유명한 소설가가 지난 어린이날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에 남긴 시라네” “그 왜 연속극 ‘토지’ 기억하지? 최참판댁 서희, 길상이! 몰라? 그거 처음 소설로 지은 분” 세 차례나 제작되면서 주인공 서희 역만도 한혜숙, 최수지, 김현주 세 명의 탤런트가 거쳐 간 드라마를 연속극 좋아하는 어머니가 모를 리 없다. 박경리 선생의 생전 사진도 보여드렸다. 담배를 손에 든 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동안 숙모에게 배워서 뽀끔 담배를 피운 적이 있다.

“소설가라 기품 있어 보이네” “난 버리고 자시고 할 게 있어야지, 내야말로 이대로 그냥 눈감고 가도 아까울 게 하나도 없으니” 어머니는 비주얼로는 얼핏 먹물깨나 먹은 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맹탕이다. 당연히 박경리 작가의 이름도 몰랐다. “그런데 그 할마시 와 혼자 살았디나?” “토지는 봐서 안다만 이야기는 다 이자뿟다.”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은 채 사대부 집안의 가계를 이어가면서 근현대사의 질곡에 온몸으로 맞선 서희가 어머니에겐 어떻게 비쳐졌을까. 어느 한 두어 부분쯤 감정이입이 된 적도 있지 않았을까.

드라마를 통해 어머니가 느꼈을 생의 악다구니와 모성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도라꾸에 치어죽은 어린 딸의 시신을 가슴에 쓸어안았던 그 참혹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보통사람이라고 해서 가슴마다에 장강 같이 흐르는 사연들이 어찌 없으랴. 우리 시대 어머니는 누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그 같은 이야기를 가슴팍에 묻고 있어 박경리 선생처럼 글재주와 체계적 사유가 없어 그렇지 쓰려고 한다면야 왜 이야기꺼리가 안 되겠나. 우리 또한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을 보고 듣고 기대며 자라지 않았던가.

세상 모든 것은 빠르게 자꾸만 흘러 11년 세월도 엊그제 같다. 박경리 선생 가시고도 어머니는 8년이나 더 사셨지만 이제는 함께 흘러간 물이 되었고 나도 그러리라. 사마천이 궁형의 고통을 이겨내고 엉덩이 힘으로 ‘사기’를 썼던 것처럼 오직 앉은뱅이책상 위의 원고지와 한 자루의 펜, 그리고 ‘적막’으로 지탱한 삶을 생각한다. 그러니 얼마나 눈부시게 시리고 고독한 생이었을까. 그렇다고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도 아니고 담배를 즐긴 것이 거의 유일한 기호였다. 폐암선고를 받고도 수술을 거부했다. 선생의 ‘홀가분’에서 우주의 생명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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