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부처/ 김광규

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몸의

부처/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으면/ 어차피 땅 위에 쓰러질 것을/ 정신의 온갖 질곡 벗어나/ 살과 뼈와 터럭과 욕망 모두/ 떨쳐버리고/ 아무런 자세도 없이 편안하게/ 땅 위에 누워있는/ 부드러운 모습/ 와불을 볼 때마다/ 아직도 부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내 마음 부끄럽다

- 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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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 ‘장길산’은 미륵의 힘으로 참된 민중의 세상을 펼쳐보려고 반역을 도모한다. 대규모 반란은 폭압 정권에 맞선 백성들의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투쟁이고, 거기에는 불심이 추구하는 민중적 믿음의 근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장길산’에서 민중해방의 미륵 발원지이자 미완의 불가사의인 ‘천불천탑’ ‘누워있는 부처’가 있는 사찰이 전남 화순의 ‘운주사’이다. “우리가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처럼 미륵님도 처박혀 있는 게야. 세상이 거꾸로 되었으니 상수하족(上首下足)은커녕 상족하수(上足下首)가 맞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합쳐 바로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닌가. 이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 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부분이다. 20세기가 다 저물어갈 무렵 ‘장길산’을 읽고서 ‘용화세상’에 대한 열망을 담고 누워 있는 와불의 모습이 문득 궁금해져서 그 일대를 여행하다가 작정하고 들렀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몇 차례 단체로 목에 명찰을 걸고 우르르 찾아갔었다. 그러나 ‘와불이 일어서면 이 땅에 민중의 염원인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그 누워계신 부처님의 메시아는 나 몰라라 하고 자연과 잘 조화된 고즈넉한 사찰과 일대의 경관만을 감상했던 것 같다. 이곳의 많은 석불들은 아무 땅에나 아무렇게 놓여 있다. 대체로 바위가 삐죽빼죽 나온 곳 아래 누워 있거나 기대어 있다. 머리만 있기도 하고 몸통만 있는 것도 있다.

가뜩이나 펑퍼짐한 평면적인 얼굴은 지워지고 부서져 불균형인 채 그대로다. 더욱이 누워있는 부처들은 전혀 근엄하거나 거룩하지 않다. 이웃의 얼굴인 듯도 하고, 그러고 보니 김제동이와 비슷한 것도 같아서 영락없는 우리 범인의 얼굴 형상이다. 소설에서는 탑과 불상이 999개라고 했지만 실제는 90개의 돌부처와 21기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그곳 주민의 말로는 5~60년대까지만 해도 집 지으면서 주춧돌로도 가져다 쓰고 이런저런 생활용 석물로 이곳에 나뒹굴던 부처의 몸을 마구 주워다 썼다고 한다.

‘장길산’에서는 10세기 경 후백제 유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하룻밤 만에 999개의 불상과 탑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원래는 첫닭이 울기 전 ‘천불천탑’을 세우려고 했으나 밤샘 노동에 힘겨운 한 사내가 거짓으로 새벽닭이 울었다고 소리친 까닭에 미완으로 그만 끝이 났다는 것이다. 지금의 와불은 그저 편안한 자세로 누워 눈 감고 손을 모으고 있다. 이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세상 사람들의 바람엔 아랑곳없이 누워 있는 포즈가 한없이 편안해 보인다. 구름을 내모는 바람결에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날 일으켜 세울 생각일랑 말고 자네들 마음이나 잘 다스려 헛된 욕심이나 털어내시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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