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의 연속이다.

봄을 좀 더 만끽하면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올봄은 꽤 만족한다.

누군가는 짧은 봄이 소리없이 왔다가 간 것을 보며 “억울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올해는 제대로 봄을 만끽한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 부산, 창원, 서울, 대구에 사는 여고 동창 15명이 경주에 모였다. 애초 계획된 남원행을 경주로 돌린 것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동창들은 이제 남편보다 친구들이 더 좋은 듯 한달음에 달려왔다.

골프를 하는 친구들은 새벽부터 달렸고 경주의 봄에 좀 일찍 취하려는 친구들은 하루 전에 내려오기도 했다.

역시 경주는 실망시키지 않았다.

보문 호수는 풍부한 수량을 자랑했고 형형색색 불빛을 받은 벚꽃은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경주벚꽃마라톤 대회 참가 선수들을 보며 중년의 여인들은 여고생이라도 되는 양, 박수에 고함까지 지르며 깔깔거리며 응원하고 보문호 주변을 밤낮 걸었다.

황리단길은 젊음의 거리 그 자체였다. 10대~20대가 주를 이뤘고 차량과 인파가 넘쳐 적응이 어려울 정도였다. 친구들은 “나이 든 증거”라며 각성을 촉구했다.

어두운 밤, 보도자료에서만 만났던 동궁과 월지, 월정교는 별다른 세계였다. 어둠을 밝히는 조명에 눈앞에 드러난 풍경에 감탄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무사히 동궁과 월지를 보고 나오는 입구에서 경북도청에서 근무하는 모 과장도 만났다. 내가 여고 친구들과 왔다고 하니 그는 동기들과의 부부 동반 모임으로 왔다고 했다.

서로 일행이 있어 길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관광’을 모토로 한 도정에 꽤 신경을 쓰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형제들과의 여름 휴가는 해외가 아니면 주로 지리산 계곡으로 간다.

그런 형제들이 지난해 여름, 휴가를 안동으로 왔다. 나의 근무지가 안동으로 된 것을 핑계로 어찌 살고 있나 살필 겸 투어에 나선 것이다.

베이스캠프가 집에 차려졌지만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관광 스케줄을 짜지 않았다. 굳이 스케줄을 잡지 않아도 될 만큼 볼거리 제공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7월 초 강렬한 햇살 아래 하회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본 형제들은 거의 녹초가 됐다. 나이가 예순에서 일흔 초반이었으니 당연했다. 이튿날 일정을 잡는데 애를 먹었다.

옥신각신 끝에 봉정사를 추천하니 형제들은 “봉정사는 뭐가 좋은데?”라며 시험했다.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극락전이 있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갔고 얼마 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고 읊었더니 “그라모 가보자”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간 봉정사 관광에서 일이 났다. 대통령 부부를 만난 것이다.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평범한 일상을 사는 국민이 국정 최고 책임자를 예고도 없이 만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악수하고 사진도 찍고….

대통령과 헤어진 이후?. 봉정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제들은 각기 봉정사 귀퉁이에 서서 다운 받은 사진을 친구나 동료, 자식들에게 보내기 바빴고 그들과 소통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여행에 생기가 돌았다. 이후 발걸음은 임청각으로 향했다.

경북에는 삼국통일 이룬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조선 500년의 기반인 유교문화의 메카 안동이 있다. 임청각에서 보듯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 정신도 깊다. 산업화의 상징인 포항과 구미가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봉정사 등 세계문화유산은 세계적인 자랑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 파리 여행 후 터키 이스탄불로 향하는 관광버스 차창 밖을 보며 “조상이 빛나려면 후손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오늘 영국 앤드루 왕자가 안동에 와서 20년 전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길을 더듬는다고 한다. 참 기쁜 날이다. 다시 한번 안동, 아니 경북의 문화유산이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왕자의 방문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즐거운 사건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 문정화 신도청권 취재팀장
▲ 문정화 신도청권 취재팀장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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