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과 삶의 맛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오월은 각종 행사와 기념일이 많다. 그 기념일마다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는 서로 다르다. ‘근로자의 날’에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내용보다는 열악한 근로 조건, 저임금, 실업률 등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에 대한 독재만큼 세계 전반에 걸친 큰 사회적 문젯거리는 없을 것이다. 어떤 노예나 노동자도 어린이만큼 무한한 순종을 요구당해 본 적이 없다. 이제 어린이들 편에서 생각할 때가 되었다.”라는 몬테소리의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어버이 날’에는 고령화 사회와 노인 문제, 해묵은 ‘효’ 논쟁이 잠시 열기를 내뿜기도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과연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한 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스승의 날’에는 교권 침해가 일상사가 된 현실을 바라보며 차라리 이 날을 없애고 모든 교육주체가 참가하는 ‘교육의 날’을 제정하자고 주장한다. 기념일이 가지는 원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과 가족, 내가 관계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를 두고 보다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중용’에 나오는 ‘인막불음식 선능지미’는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음식의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다. 음식만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것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하루하루 전개되는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는 인생살이의 참맛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용’이 가르쳐 주는 ‘인생팔미’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우리가 새겨듣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지혜로 다가온다.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닌, 맛을 느끼기 위해 먹는 ‘음식의 맛’,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하는 ‘직업의 맛’, 남들이 노니까 노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풍류의 맛’, 어쩔 수 없어서 누구를 만나는 것이 아닌, 만남의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관계의 맛’,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닌, 봉사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봉사의 맛’, 하루하루 때우며 사는 인생이 아닌, 늘 무언가를 배우며 자신이 성장해감을 느끼는 ‘배움의 맛’, 육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느끼는 ‘건강의 맛’, 자신의 존재를 깨우치고 완성해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인간의 맛’ 등이 그것이다. 박재희 교수의 해설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서 즉각적인 반응과 결과를 기대한다. 무엇을 되씹고 곱씹으며 그것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우리들 대부분은 얼핏 보고는 입에 넣은 다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데 매우 익숙하다. 이 세상 많은 것들은 시간을 두고 꼭꼭 씹어야 속 맛을 알 수 있는 진액이 나온다.

이제 우리는 좀 여유를 가지고 주어진 상황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j. 호이징가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로 정의 내렸다. 그는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 요소가 발견되며,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은 물론 전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이 있다. 그는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고 말하며,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문화가 놀이의 성격을 벗고 있다고 개탄했다.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이유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청소년의 달이자 가정의 달인 오월에 우리 모두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참맛을 성찰하고 음미하는 여유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담장 밖과 먼 산만 바라보지 말고, 내 곁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자신의 내부도 한 번씩 들여다보자. 그런 다음 내 가족과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아카시아 향기를 머금은 오월이 무르익고 있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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