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조사에서 쌍탑지와 건물지, 회랑지 유적에 이어 금동불상 등 유물 700여 점 출토

경주 사적 163호 낭산 일원에서 통일신라 이전에 만들어진 황복사 추정 금당지와 동서목탑 쌍탑지, 중문지, 회랑지 등이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사적이 드러났다.



▲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지에서 신라시대 목탑쌍탑지와 금당지 등의 유적과 금동불상, 치미 등의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북쪽으로 목탑쌍탑지와 금당터.
▲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지에서 신라시대 목탑쌍탑지와 금당지 등의 유적과 금동불상, 치미 등의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북쪽으로 목탑쌍탑지와 금당터.


사적은 경주시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성림문화재연구원(이하 연구원)에서 3차 발굴조사에서 밝혀졌다.



통일신라 이후에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과 함께 조영된 대석단 기단과 십이지신상 기단이 있는 건물지, 회랑지도 확인됐다.



이와 함께 금동입불상, 금동판불, 비석 조각, 치미, 녹유전을 포함해 700여 점의 유물도 발굴됐다. 연구원은 16일 발굴현장을 출토 유물과 함께 공개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황복사는 654년(진덕여왕 8년)에 의상대사가 29세에 출가한 곳으로, 허공을 밟고 올라가 탑돌이를 했다는 설화로 목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2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을 해체 수리할 때 나온 사리함에서 확인된 ‘종묘성령선원가람’ 명문을 통해 종묘의 기능을 한 왕실사원으로 추정된다.



▲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지에서 신라시대 목탑쌍탑지와 금당지 등의 유적과 금동불상, 치미 등의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주변 왕릉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터의 기단으로 활용된 12지신상.
▲ 경주 낭산 일원 황복사지에서 신라시대 목탑쌍탑지와 금당지 등의 유적과 금동불상, 치미 등의 70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 주변 왕릉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터의 기단으로 활용된 12지신상.


그간 두 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2016년 1차는 제34대 효성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위한 미완성 왕릉, 건물지, 남북도로 등을 확인했다.



2017년 2차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 대석단 기단 건물지와 부속 건물지 그리고 회랑, 담장,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 왕실사원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규모의 유구와 금동불상 7점을 비롯해 1천여 점의 유물을 수습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3차 발굴조사에서 1금당, 2탑, 중문으로 추정되는 사찰 건물지가 남북 방향으로 난 일직선에 배치된 형태가 확인됐다.



처음 건축 연대는 중문지 적심과 추정 목탑지에서 출토된 짧은다리굽다리접시(단각고배) 등 토기와 연꽃무늬 수막새 형식으로 6세기 후반으로 판단된다.



2017년 2차 조사에서 확인한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지는 동쪽에서 토끼, 뱀, 말, 양이 조각된 4구였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북쪽에서 소, 쥐, 돼지, 개 등 4구를 추가로 확인했다.



이번 3차 발굴조사는 통일신라 시대 가람배치와 왕실 사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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