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머니는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시는 걸까/ 한평생/ 기다리시며/ 외로우시며/ 안타깝게./ 배고프셨던 어머니/ 추우셨던 어머니/ 고되게 일만 하신 어머니/ (중략)/ 어머니는 누구랑 살까/ 이승에 있을 때/ 먼 나라로 먼저 갔다고/ 언제고 언제고 눈물지으시던/ 둘째 아들 목생이 형이랑 같이 살까/ 아침이면 무슨 밥 잡수실까/ (중략)/ 어머니 사시는 거기엔/ 전쟁이 없을까/ 무서운 포탄이 없을까/ 총칼을 든 군대들이 없을까/ 모든 걸 빼앗기만 하는 임금도 없을까/ 무서워서 하루도 한 시도/ 마음 못 놓는 날이 정말 없는 것일까/ 그래서 헤어지는 슬픔도 없는 것일까/ 정말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중략)/ 너무 많이 배고프지 않았으면/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부자가 없어, 그래서 가난도 없었으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으르지도 않고 겁주지도 않고/ 목을 조르고 주리를 틀지 않았으면/ 소한테 코뚜레도 없고 멍에도 없고/ 쥐덫도 없고 작살도 없었으면/ (중략)/ 그리고 이담에 함께 만나/ 함께 만나 오래 오래 살았으면/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어머니 함께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살았으면/ 오래 오래 살았으면……
- 동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1988)
언젠가 수십 광년의 거리인 태양계 밖에서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 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넘어 지구별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끼리 따로 한 살림 오붓하게 차려 살고 있진 않을까란 공상을 했다. 권정생 선생과 그 어머니의 이승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시를 읽으면서 내 공상도 활기를 띄어 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랬다. 그곳에 전입신고 마치고 “아이고, 이제 왔나, 고생 많았지” “보고 싶었어요, 어머니” 외할머니도 뵙고, 순영이 누나도 만나고, 그리운 사람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이제는 자리 잡고 지낼 만 하신지. 이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늬로 오래오래 사시다가 훗날 우리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권정생 선생의 섬세한 애정이 구구절절 배어있어 이오덕 선생 말씀 마따나 '무조건 감동적'이다. 선생 자신도 12년 전 5월17일 ‘보리밥 먹어도 맛이 있고’ ‘나물 반찬 먹어도 배가 부른’ 그곳으로 떠나가서 ‘어머니랑 함께 외갓집도 가고’ ‘남사당놀이에 함께 구경도 가고’ 그러면서 오래오래 잘 살고 계실 것이다. 선생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며 인류를 진정으로 사랑하신 이 시대의 성자셨다. 그리고 줘도 받지 않으실지 모르겠으나 누구보다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평화주의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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