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봉논설위원
▲ 홍석봉논설위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그는 95세까지 살았다. 그의 묘비명을 두고 오역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한 영문학자가 나서 “내가 비록 꽤 오랫동안 이승을 어슬렁거리며 버티긴 했지만, 결국엔 죽음을 맞을 줄, 알았다고”라고 번역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의역이 훨씬 맛깔스럽다. 감성도 적당히 자극한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 이후 비상대책위를 가동하면서 판을 바꿔보려고 했다. 하지만 우물쭈물하다가 어정쩡한 상태로 봉합하고 말았다. 한국당은 대표 선수를 바꾸고 왼쪽으로 급격히 기운 정부 여당을 견제하겠다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10일부터 5일간 대구·경북(TK) ‘민생투쟁 대장정’을 했다. 보수 안방에서 세력 결집과 함께 텃밭 다지기다.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지역을 두루 돌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성토하고 대안 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 한국당은 웰빙 정당의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고 투쟁적인 야당의 면모와 선명성을 보여주려 애썼다.

-환골탈태 놓친 한국당, 안방 싹쓸이만 노리나

황 대표도 정치 신인 이미지를 탈피, 야당 대표로서 뭔가 보여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중과 교감에 아직 풋내를 풀풀 풍겼다. 하지만 TK 지역에서 ‘포스트 박근혜’의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모양새다. 모두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콘크리트 지지층 덕분이다. 박근혜 탄핵 이후 마음 둘 데 없던 TK가 지역과 인연도 별로 없고 미더워 보이지도 않지만 황 대표를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다.

한국당은 지방선거 참패 후 환골탈태 기회를 놓쳤다. 21대 총선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현시점에서 TK에서 거론되는 인사는 단골 출마자가 대부분이다. 신인은 가물에 콩 나듯 하다. 흘러간 유행가만 부르고 있다. 그 나물의 그 밥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근 한국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내년 총선에서 TK는 한국당이 전석 석권도 가능하다는 분석에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지역 한국당은 “이대로 총선까지 주욱~”을 외치는 분위기다. 예전의 한국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몰표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정부·여당의 잇단 헛발질에 울화통이 터진 민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당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지지율에 안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추세라면 대구·경북은 몰표까지 가능할지 모를 정도다.

-천막당사 시절의 각오로 와신상담해야

하지만 5·18 폄훼 발언으로 완전히 등을 돌린 광주·전남의 ‘넘사벽’과 쉽지 않은 보수대연정 등 정권재창출은 멀어 보인다. 지난 18일 5·18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은 황교안은 환영받지 못했다. 기념식 후에는 항의 시민들을 피해 황급히 퇴장해야 했다. 황 대표는 광주·전남의 두꺼운 벽을 확인했을 터이다.

지역민들은 맨날 그 얼굴인 정치판을 보면서 속에 천불이 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다. 시원한 물갈이와 톡톡 튀는 새 인물이라면 어쩌면 눈 딱 감고 다시 한번 찍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당에는 물론 대구·경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지만 말이다.

다시 대구·경북이 갈라파고스에 갇히려고 한다. 20대 총선 당시 대구에서 2명의 민주당 의원을 뽑아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냈다. 그것이 2년 만에 돌변했다. 대구 여당 의원들의 역할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싫고 민주당이 보기 싫다고 한다. 표심이 다시 심통 부릴 태세다. 지역이 한국당 싹쓸이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21대 총선이 채 1년이 남지 않았다. 한국당은 뼈를 깎는 각오로 인적 쇄신 및 혁신을 꾀해야 한다. 새 인물을 중용하고 지역 인재를 키워 지도자감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경북이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으려면 종 다양성 확보도 필수적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TK는 보수의 최후 보루이지 한국당 바라기만 하는 곳은 아니다. 한국당은 천막당사 시절의 각오로 와신상담하지 않고는 정권재창출은 꿈도 꾸지 말라. TK를 볼모 삼지 마라.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