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중략)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중략)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중략)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 5·18민중항쟁 27주년기념 백일장 시 부문 대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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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저씨가 단숨에 내뱉은 그때 ‘그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쓴 것 같은 이 시가 18세 소녀의 시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라는 찬사를 받았다. 5·18민중항쟁기념사업회가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자는 취지로 2007년 개최한 백일장에서 대상을 차지한 당시 경기여고 3학년 학생의 작품을 보고 심사를 맡은 정희성 시인은 경악했다고 한다. ‘그날’의 일을 요즘 아이들이 알기나 할까 싶었는데, 항쟁을 겪은 사람도 이렇게는 쓸 수 없을 것을 어린 학생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날’의 현장을 이토록 놀라운 솜씨로 몸 떨리게 재현해놓았으니 말이다.

정민경양은 여수에서 태어나 여섯 살까지 광주에서 자랐으며 어릴 때 들은 이야기와 강풀의 ‘26년’이란 만화가 원천이 되어 자연스레 시가 되었다고 한다. ‘그날’은 한 아저씨의 자전거에 올라탄 학생이 진압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도움을 청하는 학생을 진압군에게 내주고, 평생을 후회와 슬픔으로 살아야 했던 ‘나’에 대한 고해성사다. 산문 형식의 이 시에는 5·18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였다. ‘학살당한 어린 시민군의 슬픈 얼굴,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소시민의 비애,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했던 진압군의 총구, 제 나라 국민에게 등을 돌린 비겁한 언론사들’

여기에 살아남은 자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까지, 5월의 아픔과 비극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5·18도 4·19나 6·25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으로 깊숙이 숨어 교과서 안에서 관념으로만 이해될 만큼 세월이 흘렀다. 현재와 맞닿은 역사로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를 겪는 ‘그날’ 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5·18이다. 그리고 그때 항쟁을 무력 진압했던 우두머리가 멀쩡히 살아있고 그들과 맥이 닿은 정치세력이 일부 존재한다. 실체적 진실이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고, 극소수이긴 하지만 아직도 북한군 투입설이나 폭도들의 대부분이 불량배들이라고 나불대는 이도 있다.

최근 5·18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 증언들은 그동안 침묵하고 봉인했을 뿐이지 대부분 다툼의 여지없는 진실의 언어라고 본다. 명백한 사실과 진실도 누군가 입을 떼지 않으면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세월 참 많이 흘렀다. 이제 하루빨리 진실의 역사 위에서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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