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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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마지못하고 피치 못해 수락한 후배의 결혼식 주례에서 신랑신부에게 해주었던 말을 한편의 시로 다듬었다. 노총각 시인에게 주례를 부탁할 땐 뭔가 특별한 시적 수사를 은근히 기대했을 터인데, 그 기대에 부응키 위해 며칠 골똘히 짜낸 것이 이 ‘긴 밥상’ 이야기다. 당시엔 강화도 바닷가 사글세방을 빌려 혼자 사는 처지였기에 큰상이 있을 리 없고, 있다한들 그걸 펼 일은 도무지 없을 터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살 때의 제삿날이라도 문득 떠올렸다면 이야기가 된다. 긴 밥상의 한쪽을 들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겠다.

흔들리지 않게 높이와 속도를 조절해가며 걸음걸이를 서로 맞춰가야 상 위의 음식이 엎질러지지 않음을. 문턱을 넘고 좁은 문을 통과할 땐 바로보고 가는 사람이 등 뒤로 걷는 사람에게 건네는 ‘조심’이란 짧은 한 마디, 그리고 앞 사람의 눈빛만 보고 방향을 가늠하면서 상이 놓일 자리까지 탈 없이 옮겨와 상을 안착시킨다. 그런 상을 많이 들어본 부부는 척하면 삼천리고 안 봐도 비디오다, 자연히 서로 빠삭하고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긴장은 흐트러지고 감각은 무디어져 그 조화가 깨어지기도 한다.

욕하면서 가끔 보는 종편채널이 있다. 부부들과 패널들이 떼거리로 나와서 서로의 허물을 이야기하며 깔깔대는 “얼마예요”란 이상한 예능프로그램이다. 다른 사람의 말에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더러는 감정이입도 되고 시청자들에게 동의와 위로를 구하기도 하는 형식이다. 내 눈에는 멋지고 이상적인 여성은 하나도 안 보이고, 남편 또한 아내의 관점에서는 하나같이 철부지고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속 좁은 이기주의자들이다. 서로 제 잘났다 자기 말이 옳다고 한다. 그걸 우두커니 바라보는 내가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배우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근히 부러워지면서 ‘복도 많아’ 그런다. 이집 저집 부딪치며 다투고 참는 이유도 비슷하다보니 다행히 출연자들 가운데는 험악한 지경까지 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러나 현실 속 부부들은 유쾌하고 솔직한 부부설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갈라서는 커플이 수두룩하다. 젊은이들은 주변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잘 사는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둘레에는 부러움을 살만큼 잘 사는 부부보다 그냥 사는 부부가 압도적인 탓으로 결혼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부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녀들조차 부모의 결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여학생들에게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5% 정도, 엄마와 같은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3% 남짓만 ‘그렇다’고 답할 만큼 부모의 결혼 생활을 바람직한 모델로 꼽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문 환경 탓도 있겠으나 예전과는 많이 다른 현상이다. 아무쪼록 세상의 부부들이여,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는’ 일 없이 ‘한 발 또 한 발’ 사랑의 이름으로 두렵지 않기를.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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