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밑의 도끼를 감춰라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며칠간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닫고 살았다. 거북한 말의 전쟁 때문이다. 정치이슈를 올리며 니편내편을 가르는 듯한 글도 불편하고, 내편이 아니면 욕설까지 더하는 글을 보면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소통의 장이 아니라 편향된 나의 주장만 펼치는 강요의 장이 되어가는 SNS가 불편했다.

글 뿐만 아니라 말 또한 격해지고 있다. 가히 말의 전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말의 전쟁 중심에 정치권이 있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은 남을 해칠 수도 있으니 말조심을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혀 아래 도끼를 오히려 휘두르고 있다.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듯이 보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이 그랬다. 그는 “KBS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고 말해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달창’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해서 말하는 비속어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광주행에 대해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야기한 ‘사이코패스 수준’ 발언도 그랬다. 이 대표는 최근 라디오방송에서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5.18 특별법을 다루지않고 광주에 내려가겠다고 발표한 것은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이라고 본다”고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의 ‘한센병’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그러고서는 원래 뜻은 그게 아니었단다. 원래 전하고자했던 메시지는 없어지고 막말만 남았는데도….

막말이란 게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제1야당 대표는 문대통령을 ‘좌파 독재자’라고 표현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5·18기념사에는 ‘독재자의 후예’라는 표현이 나타났다. 정치란 게 원래 그런 거다?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말은 손잡이 없는 칼이다. 휘두를수록 칼을 잡고 있는 손만 다친다. 말로 먹고사는 게 정치라면서 왜 막말로 자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는 소통이라면서 불통의 막말로, 갈등을 조정하는 게 정치라면서 증오의 막말로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눈치 없이 휘두르는 혀 아래의 도끼가 제 몸을 찍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멈출 줄을 모른다. 혹시 노이즈마케팅으로 막말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오산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처럼 막말은 블루오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스만 보면 쏟아지는 정치권의 막말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인지 일상생활에서도 말들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SNS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내지르는 도구처럼 변해가고 있다. 마치 남의 눈치 보며 살 필요가 있느냐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격하고 무례한 말과 글에 대한 내성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악순환이다.

정치권에서는 악순환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말과 글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감염력도 높다. 정치권의 막말은 SNS를 통해 순식간에 이슈화되면서 빠르게 전파된다. 뒤늦게 사과하고 SNS에서 글을 지우곤 하지만 이미 확산된 다음이다. 말의 전쟁이라지만 너무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공식석상에서, 더군다나 정당들의 입이라는 대변인 논평에서 어떻게 저렇게도 저급한 표현들을 주고받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들을 우습게보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까. 막말금지법이라도 만들어야할 판이다.

정치는 누가 뭐래도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다. 말은 대화와 타협을 이끄는 수단이다. 상대를 향해 증오를 가득 담은 말을 쏟아내 놓고는 타협을 이끌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품을 닮는다. 공멸의 길로 가는 저급한 막말잔치보다 갈등을 봉합해주는 훈훈한 말의 성찬을 기대해본다. 서로가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켜야 할 것 아닌가.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말의 전쟁 중에 우울한 소식들이 잇따른다. 19일 발표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34%로 성장률을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전문가들은 설비투자 감소의 위험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 많은 집은 장 맛도 쓰다. 어디 지금이 말 많은 집으로 비쳐질 때인가. 제발 혀 아래의 도끼를 감춰줬으면 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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