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공황의 차이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경제문제를 아주 단순화해서 보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간 줄다리기에서 벌어지는 문제로 볼 수 있고, 경제정책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을 동반한 경기과열상태를, 디플레이션은 물가하락과 함께 물 먹은 빨래처럼 경제 전반의 활력이 사라지면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둘 다 심각한 경제문제지만,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대다수 경제학자가 그러하듯 디플레이션이 더 골칫거리다. 왜냐하면, 인플레이션은 급격히 진행되지만 않는다면 돈줄을 죈다거나 물가상승에 편승한 폭리를 방지하거나 생산성 또는 공급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반면에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더라도 명목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없으므로 실질적으로는 금리상승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이는 투자와 생산, 고용의 감소를 불러올 뿐 아니라 실질채무부담을 증가시켜 채무불이행이나 금융기관 위기와 같은 신용리스크를 확대해 경기침체 즉, 불황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계속 진행되면 공황에 이르게 된다.

아주 단순화해서 각 개인 처지에서 보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면 임금보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 상승 속도가 더 빨라 구매력이 하락하는 등 생활수준을 낮춘다는 점에서 문제라면, 디플레이션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싸졌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살 돈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즉 점진적이든 아니든 디플레이션 진행 과정에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어 개인이나 가계의 생존기반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대공황기(1929~1939년)의 미국과 여전히 ‘잃어버린 20년’으로 칭해지는 일본의 경험을 보면 된다. 미국은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후 4년 만인 1933년에는 명목 국민순생산이 50% 이상 감소하고, 각종 물가지수가 적어도 25% 이상 폭락하는 가운데 실업률도 20% 중반 이상으로 치솟는 등 파멸적인 상황에 내몰렸었다. 이후 디플레이션 탈출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결정을 계기로 군수특수가 일어난 후에나 가능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부동산버블의 붕괴로 자산가격이 급락, 다수 금융기관과 기업은 물론 개인이 파산하는 등 경제 전반의 활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장기불황의 긴 터널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미국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내몰리지는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국내 경제로 눈을 돌려보면 작금의 우리 경제에서 과거의 미국과 일본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추론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비록 올해 1분기에 전기대비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다음 분기부터는 플러스 성장할 것이고 특별한 외부충격이 없는 한 연간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과거의 미국과 일본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경험할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 그 근거로는 우선, 우리 경제가 지난 수년 동안 투자와 소비 활력을 잃어가면서 전반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부동산을 대표로 하는 자산가격의 하향 안정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근거가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0%대 물가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디플레이션 논란의 기폭제가 되기에는 충분하다.

최근 국내 실업자가 124만 명을 넘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실업률도 19년 만에 최고치로 나타났다는 점은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경계에 달한 것은 아닌가는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대변해 준다. 청년실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당신의 이웃이 일자리를 잃으면 불황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그것은 공황이다’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눈치채진 못했지만, 점진적인 디플레이션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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