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성주 참멜팜

멜론은 한때 ‘교황의 과일’이라고 불릴 만큼 고급 과일이었다. 서민들은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웠다. 제213대 교황 ‘이노센트 8세’는 멜론 마니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멜론부터 먹고, 식사 전에는 멜론을 반으로 잘라 속을 파내고 와인을 부어 마셨다고 한다.

15세기 당시 멜론은 지금처럼 당도가 높은 과일은 아니었다. 당도가 낮고 채소처럼 먹던 시절이었다. 이후 품종개량을 거치면서 당도와 향이 강한 ‘머스크멜론’이 탄생했다.

‘머스크’는 페르시아어로 ‘사향’이란 뜻이다. 이처럼 고급 과일로 알려진 멜론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국민들 곁에 다가왔다. 멜론이 아니라 멜론이 함유된 가공품으로….

참외의 고장 성주에서 멜론재배로 부자 농부를 꿈꾸는 강소농이 있다. ‘참멜팜’의 박진회(63)·이애경(63) 공동대표가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1만여 ㎡의 농지에서 캔털루프 멜론과 참외를 재배해 연간 1억여 원의 소득을 올린다.

◆32년 차 베테랑 농부

박대표는 30년 이상 참외농사를 해온 참외전문가다. 하지만 본래 직업은 농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전기기술자였다. 인천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다가 1987년 칠곡군으로 귀농해 참외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인근에 있는 미생물배양기 제조회사에서 5년간 근무했다. 이때 박대표는 미생물이 토양과 농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았고, 미생물 제조기술도 익혔다.

이후 2007년에 참외의 고장인 성주로 이주해 참외농사를 짓다가 3년 전부터 멜론을 함께 재배하고 있다. 모두가 성주에서는 멜론 재배가 어렵다고 고개를 흔들 때 과감하게 멜론재배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익혀온 참외재배 기술과 토양관리 기술이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30년 넘게 축적한 농사와 미생물, 토양관리 기술이 밑거름이 됐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박 대표와 함께 캔털루프멜론 작목반을 조직해 보급에 힘쓰고 있다.

◆왜 캔털루프 멜론인가?

성주는 우리나라 참외 면적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전국 최고의 참외 고장이다. 당연히 소득 면에서도 최대의 ‘효자작물’이다. 성주지역 참외 농가의 기술력은 다른 지역에 비교해 월등히 높다. 성주군 전체 참외 소득이 5천억 원에 육박하고 억대 농가도 수두룩하다.

이런 고소득원을 두고 이들 부부가 캔털루프 멜론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박대표는 “비교적 경제적 능력을 갖춘 ‘베이비부머’들이 퇴직을 하고, 건강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먹거리도 기호성에서 기능성으로 바뀔 것”이라며 “혈관 건강에 좋다는 캔털루프 멜론이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력과 경영비도 적게 들어간다. 멜론은 참외와 비교할 때 재배 기간이 짧다 보니 관리에 따른 경영비가 절감된다. 그동안 축적된 참외재배기술을 그대로 멜론 재배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박대표의 예측은 맞았다. 처음 멜론재배를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성주지역에서 멜론재배는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으나,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캔털루프멜론 작목반이 재배에 성공하면서 높은 가격에 판매되자 많은 농가들이 도전하고 있다.

◆혈관 건강에 좋은 캔털루프멜론

캔털루프 멜론은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주로 재배돼왔다. 껍질에 네트가 형성되어 있고, 녹색의 세로줄이 있다. 과육은 주황색으로 달콤한 향이 강하다. 이 향이 사향의 향기를 닮았다고 해서 ‘머스크향’이라고도 한다.

멜론은 생식용으로 먹거나 주스, 아이스크림, 스무디 등의 재료로 사용한다. 당질과 섬유질, 칼슘, 비타민, 미네랄 성분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최근에는 혈관 건강과 항암효과, 노화 방지, 면역력 향상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능성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도 주목을 받고 있다. 베타카로틴 성분은 활성산소의 발생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항산화 효소의 일종이다.

◆ 땅심은 농사의 기본

농업은 토양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이다. 모든 작물은 땅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햇빛에 의한 광합성작용으로 영양소를 만든다. 물론 요즘을 수경재배방식이 있지만, 기본은 토양이다.

박대표는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한 기본은 땅심을 돋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농한기 없이 연중 돌아가는 과채류 재배 시스템 속에서도 박대표가 5천㎡의 벼농사를 하는 것도 쌀 생산 목적보다는 볏짚생산 목적이 더 크다.

가을이 되면 부부는 볏짚을 절단기로 짧게 잘라 멜론밭에 뿌리고, 흙과 잘 섞이도록 로터리 작업을 해주는 등 ‘땅심 돋우기’ 작업에 열중한다.

“땅의 힘은 무한하지만, 계속 뽑아 쓰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라 미리 대비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 박대표의 주장이다.

부부의 이런 노력 덕분에 다른 멜론밭보다 참멜팜 농장은 유기질 함량이 풍부하다. 땅심이 높다는 의미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대표는 주변에서 ‘미생물 전문가’로 통한다. 예전에 미생물배양기 제조회사에서 터득한 미생물제제 배양 기술이 유용하게 쓰인다. 유용 미생물군인 EM을 확대 배양해 토양에 뿌림으로써 전기전도도(EC, 화학비료 집적도)를 낮춰 토양을 건강하게 하는 과학적 영농방법을 적용한다.

미생물 확대 배양에는 천일염과 막걸리, 해조류 등 다양한 천연 재료를 활용한다. 이런 노력은 멜론의 품질향상으로 이어진다. 고품질이다 보니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고품질을 바탕으로 요즘은 전량 직거래로 판매하지만, 계통출하를 하던 2011년에는 서울농산물시장에서 연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신기술로 노동력 절감

수작업이 많은 농업에서의 ‘노동력 절감’ 문제는 가장 절실하면서도 중요한 과제다. 농가마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외와 멜론재배에서 박대표가 도입한 신기술은 ‘순접붙이기’와 ‘지표심기’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편엽 합접’ 방식으로 접붙이기를 한다. 대목으로 쓰는 호박의 줄기를 자르고 그 위에 참외나 멜론의 떡잎이 붙은 접수를 잘라서 붙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박대표는 접수의 떡잎 윗부분의 줄기를 잘라 접을 붙이는 ‘순접붙이기’를 한다. 이 방법은 대목과 접수의 활착이 이루어진 이후, 일일이 떡잎을 제거해주는 노동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모종의 ‘지표심기’도 획기적인 영농방법이다. 지표 심기는 흙에 구덩이를 파고 심지 않는다. 이랑에 비닐 멀칭을 하고 충분한 관수를 한 후, 비닐을 일자(一字)로 절단하고, 그 속에 모종을 밀어 넣고 손으로 꾹꾹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뿌리의 활착률을 높이고 몸통에서 발생하는 부정근의 발생을 좋게 해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이것은 초기 당도를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땅을 파고 묻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다. 이 두 가지 영농기술은 박대표가 직접 개발한 것이다.

◆전량 직거래로 고소득 창출

‘참멜팜’은 1만㎡의 하우스에서 생산하는 참외와 캔털루프 멜론을 전량 직거래로 판매한다. 공판장에는 한 상자도 내보내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직거래의 기본은 품질이지만, 이들 부부의 타고난 홍보와 마케팅 기법이 큰 몫을 한다. 현재 고정 고객이 5백여 명 이상이다. 1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온 고객도 상당수다.

‘참멜팜’이란 농장 이름을 지을 때도 멜론 한 상자를 상품으로 걸고 공모한 결과 탄생한 이름이다. 공모에는 33명의 고객이 참여했고, 참외와 멜론의 합성어인 ‘참멜팜’이 당선됐다.

물론 상품으로 멜론 한 상자를 선물했고, 나머지 32명의 응모자에게도 참가상이란 이름으로 멜론 한 상자씩 보냈다. 이 덕분에 이들은 모두 고정고객으로 자리 잡았고, 홍보요원이 됐다.

이들 부부는 고객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적힌 택배 노트가 보물이다.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둔다. 참외 고객에게는 멜론을 하나씩 보너스 상품으로 보내기도 한다. 남들은 미처 생각하지도 않던 1990년부터 ‘인터넷 판매’를 시도했다. 이런 남다른 노력에다 고품질이 ‘전량 직거래’라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 멜론재배의 최고 전문가가 꿈

박대표는 캔털루프 멜론의 재배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규모의 확대를 통한 소득증대보다는, 고품질의 멜론을 생산해 ‘전국 최고의 멜론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박대표는 “규모를 확대하면 소득은 늘어나겠지만, 이보다는 최고의 기술을 축적하고 그 기술을 귀농인이나 청년 창업농들에게 전수해 고소득을 올리도록 해 조기에 농촌에 정착하는 일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이것이 개인의 성장보다는 ‘우리나라 농촌 전체를 살리는 일’이라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끓임 없이 새로운 영농기술에 도전하는 이들 부부는 농사를 사랑하고, 천직으로 여기는 ‘참 영농인’의 모습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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