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함정에서 살아남기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점입가경에 이른 미·중 무역갈등을 보노라니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재현된 느낌이다. 이는 지중해의 해상교역을 통해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적 패권까지 장악하려던 아테네와 이를 견제하려던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치른 전쟁을 말한다. 거의 30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스파르타가 승리하면서 패권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종국에는 고대 그리스가 쇠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훗날 아테네 출신 역사가이자 장군인 투키디데스는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아테네에게 패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한다. 즉,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서로를 피폐케 하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현상이다.

지금의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이들과 소위 우호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이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도 아니거니와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이것은 미·중을 포함한 관련국 모두 과거 일본, 독일의 부상으로부터 비롯된 세계적 규모의 전쟁과 미·소 간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투키디데스 함정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위험을 스스로 초래할 만큼 무모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미국과 중국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만큼은 회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분명한 점은 무역갈등으로 번진 양국 간 패권 경쟁이 해결되기에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처럼 미국은 부분적인 승리이건 아니건 간에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자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서 비아냥거림을 당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서 말이다. 반대로 세계 자유무역질서 유지라는 명분을 내건 중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 미국의 전략을 와해해 나가면서 최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충족시키려 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떤 결론이든 미·중 간 갈등 해소 과정에서 세계 경제는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고, 더 큰 문제는 고통 치유를 위한 대국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자신의 이해에 매몰되어 버린 강대국의 리더십 부재로 세계 경제가 재난의 위협에 봉착하게 되는 이른바 킨들버그 함정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OECD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미·중 관세전쟁을 꼽았다. 만약, 이 두 나라가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당사자들도 1% 내외의 성장률 하락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2021년까지 세계 GDP가 0.7% 줄고 교역량도 약 1.5%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미·중 간 무역갈등은 환율전쟁으로까지 비화해 전면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국내 경제 여건 변화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환율은 연일 널뛰기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수출 경기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외환시장이나 물가 등 오히려 불안만 조장하고 있다. 내수시장도 침체다. 금리 인하 등 좀 더 완화적인 금융통화정책을 쓰고 싶어도 물가만 더 높이지는 않을까, 외환시장이 더 불안해지지는 않을까,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지는 않을까 등 걱정이 앞선다. 더군다나 외교적으로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동참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데, 이에 따르자니 내심 제2의 사드사태가 유발될까 염려스럽고 따르지 않자니 미국의 보복이 두렵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는 아직도 2% 중반대의 성장률 목표치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가 현재의 엄중한 경제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타당성이 실린다. 물론,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목표치를 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닥친 두 개의 함정이 너무나 커 정부의 정책 노력이 무력화될까 두렵다. 시나브로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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