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장요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들을/ 다뉴브강 물결이 신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걸음의 의지와는 무관하지// 강으로 뛰어든 노란 버스가/ 유람선의 기분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구급차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중략)// 오랫동안 주인을 신지 못한 신발들은/ 햇빛 아래서도 스폰지 같은 어둠을 신고/ 브론즈가 되어간다// 걸음들이 맨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걸어도 닳지 않는/ 바닥을 견디고 있다

- 웹진 《시인광장》 2016년 1월호

.........................................................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여행객들에게 부다페스트는 도나(독일에서는 도나우, 영어식으로는 다뉴브라 불리는)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부다와 페스트 지역의 경관, 특히 새벽 1시까지 조명이 켜지는 환상적인 야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람선을 타고 세체니 다리 밑을 지나며 조망되는 부다왕궁,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 등 유럽의 3대 야경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평판이 과장이 아닐 정도의 야경은 충분히 경탄을 자아낼만했다. 그리고 직접 경험하진 못했으나 ‘강으로 뛰어들수 있는 수륙양용 노란버스’도 있다고 들었다.

헝가리하면 왠지 배고픈 나라일 것이란 선입견은 단박에 전복되고 만다.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와 더불어 2차 대전 후 50년간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 때문에 우중충한 사회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않을까란 어림짐작도 싹 씻겨 내려갔다. 아시아의 훈족이 세운 헝가리는 남한과 비슷한 면적에다 인구는 1천만 명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유대인이 대다수이긴 해도)를 14명이나 배출해낸 과학기술강국이다. 비타민C를 발견하고 임플란트를 고안하고 볼펜을 발명하고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를 만든 나라다.

이만하면 야코가 죽을법한데, 지금의 활기찬 겉모습 이면에는 주변국의 지배를 받으며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해온 아픈 역사가 감춰져 있어,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는 나라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이 많이 거주했던 헝가리는 나치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당했다. 도나 강변 한쪽엔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얼핏 영화 ‘글루미선데이’가 연상되면서 음산한 기운이 확 번졌다. 전쟁 막바지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한 메모리얼이었다.

신발을 벗으라는 명령을 받고 강가에 도열한 유대인들을 등 뒤에서 총으로 난사해 바로 강에 빠트린 그 현장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그들이 어떤 죽임을 당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기 위해 브론즈로 벗어놓은 신발의 모형을 설치해 추모하고 있다. 그 마지막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오랫동안 주인을 신지 못한 신발’ 안에는 작은 초들이 들어있고 주위에는 마른 꽃들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낯익은 노란 리본도 두어 개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 메모리얼을 배경으로 얼굴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도나 강 유람선 참사 소식을 접하고 도리 없이 2년 전 같은 배를 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배안에서는 와인을 유리잔으로 한잔 씩 서비스로 따라주었다. 이국의 멋진 야경을 보며 인생여행을 즐기다가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때도 대형크루즈선박이 바로 눈앞을 가로질러갔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