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와 여론

김창원

독자여론부장

여론조사에 누구나 일희일비하고 있다. 여론조사는 전체 모집단에서 작은 수의 표본을 추출해 표본값을 통해 모집단의 견해나 여론을 추정한다. 거의 매주 발표되는 정당지지도나 국정 관련 여론 조사의 모집단은 전체 국민이다. 여론조사기관은 가지고 있는 DB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조사에 응답한 응답자의 데이터를 통계 처리해 주어진 설문에 대한 모집단의 여론을 추정한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기관이 가지고 있는 표본 집단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모집단과 유사한지가 신뢰를 담보한다고 말한다. 전화를 걸었을 때 응답률은 10%보다 훨씬 낮다.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응답률 기준을 20% 이상으로 높인다면 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기관은 한 군데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여론조사란 어떤 추세나 경향을 짐작할 수 있는 참고 자료는 될 수 있겠지만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거의 매주 나오는 여론 조사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과 정부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이 게시판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현 정부가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동시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곳에 질문을 올렸다고 무조건 답하는 것은 아니다. 30일 기준으로 20만 명 이상의 추천 청원이 있는 것만 답을 한다. 일리있고 일면 수긍이 되는 청원도 많지만 20만 명 이상이 청원한 현 여당과 야당 해산 건이나 대통령 탄핵 청원 같은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국민청원 게시판의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악용될 때는 참으로 난처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이웃의 여론을 조사하고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하는 것이 미친 짓인 것처럼 대중의 여론을 조사하고 정치라는 신체에 처방을 내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라고 한 플라톤의 말이나 “모세가 이집트에서 여론조사를 했더라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었을까?”라고 한 트루먼 대통령의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정치든 기업이든 지도자는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다수 대중의 요구에 지나치게 민감해서는 안 된다. 레이건 대통령도 “내가 가끔 궁금해하는 것은 ‘만약 모세가 십계명을 미국 의회에서 처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말했다. 여론을 무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민감하면 장기적이고 영속적인 가치를 가지는 일을 추진할 수가 없다.

트루먼 대통령은 “비관주의자는 기회를 난국으로 만드는 사람이며, 낙관주의자는 난국을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다. 남의 말과 주위 여론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심한 비관론자들이 많다.

우리는 여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큰길을 향해 걸어가는 지도자를 갈망한다. 기업이든 정치든 트루먼 대통령이 남긴 말들을 한 번 귀 기울여 보면 많은 도움 된다. 그는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호랑이를 타는 것과 같다. 호랑이는 계속해서 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힌다. 대통령은 끝없이 사건을 처리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사건이 곧 대통령을 처리한다. 결코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항상 큰 계획은 수정할 수 있지만 작은 계획은 결코 확대할 수 없다. 나는 자잘한 계획에는 생각을 집중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앞일을 결코 예견할 수 없는 중대한 국면에 대처할 만한 큰 계획에 생각을 집중한다.”라고 말했다. 이윤재, 이종준의 ‘말 콘서트’에 정리되어 있는 내용이다.

“모든 독서가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지도자는 독서가임에 틀림없다.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유머감각이 없다면 누구도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그의 말이 유난히 와 닿은 요즘이다. 우리는 늘 공부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는 지도자, 분노와 경계보다는 관대하면서도 여유로운 표정을 한 지도자를 보고 싶어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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