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이 많으니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막말 논란이 한창이다.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함 또는 그렇게 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어떤 말이 막말인지 실전에서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 판별기준이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문외한의 시각으론 성희롱의 경우와 비슷한 감이 든다. 성희롱은 ‘상대편 의사에 관계없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이다. 성희롱도 그 판별기준이나 경계가 모호하다. 제일 중요한 건 상대편의 의사나 기분이다. 이점 서로 닮은꼴이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 둘 다 해당사항이 없다. 문제는 그 상황이 매우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사실이다. 주관적이라는 점은 억울한 경우가 있다는 뜻이고, 자의적이라는 점은 제멋대로여서 일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막말이나 성희롱으로 몰아갈 땐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심사일언하지 않은 막말을 심사숙고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자칫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라 할 수 있다. 그 기준이나 경계가 모호한 특징을 고려하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사려 깊고 신중해야 무고한 사람이 공연히 다치지 않는다.

정치권의 막말 논란을 재음미해보는 것도 무료한 작업은 아니다. 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김혁철을 처형하고, 동생인 김여정까지 근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야만성과 불법성, 비인간성만 뺀다면 어떤 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 “누가 저쪽처럼 처형하라고 하냐. 책임은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 게 국회의원으로서 치욕스럽지만 김 위원장이 책임지는 면에서 문 대통령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 말들은 생각 없이 함부로 한 말도 아니고, 속된 말도 아니다. 막말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잘못한 사람에게 문책을 제대로 하라는 취지로 보인다. 너무 나간 부분이 살짝 있지만 그 정도로 표현의 자유를 유월한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자존심이 상할 말을 했다는 점이 문제다. 막말이란 공격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면이 있다.”는 부분만 가지고 막말이라 단정할 순 없다. 전후 문맥으로 보면 정 위원장의 해명이 이해가 된다. 당내 행사에서 한 말인 점도 참작해야 한다. 정 위원장의 기분이 상했다면 상호 막말 논란이 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막말 공격’에 대해 정 위원장이 그게 도리어 막말이라고 응수하지 않은 걸 보면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통 큰 자세다.

민경욱 의원은 헝가리 유람선 참사와 관련, “차가운 강물에 빠졌을 때,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고, 골든타임이 경과한지 한참 됐는데, 뒤늦게 “문 대통령은 구조대를 지구 반 바퀴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면서 중요한 건 속도”라며 뒷북을 친 일에 대해 작심한 듯 빈정거렸다. 골든타임과 헝가리까지 가는 시간을 비교하면 속도 얘긴 난센스란 뜻이다. 일각에서 민 의원의 말을 막말이라고 비난했다. 막말에 포섭될 정도는 아니다. 앞뒤가 맞지 않은 걸 꼬집었다. 말꼬리 잡는 수준이다. 문제는 상대방이 화낼 언사라는 점이다. 점잖지 못한 유머라 여기고 넘어가면 그만일 텐데….

한선교 한국당 사무총장은 당직자에게 “X같은 놈”, “꺼져라” 등 쌍소리를 했다. 막말이다. 사실 막말보다 갑질 성격이 더 짙다. 본인이 사과한 것만 봐도 자타가 인정한 막말이다. 수양을 더 쌓을 필요가 있다. 한 총장은 또 다른 막말 논란에 휩싸여 있다. 기자에게 “걸레질을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복도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미끄럼 타듯 앞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한 총장의 해명이 아니라도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적절한 표현은 아닐지 몰라도 그 상황을 자기 방식으로 묘사한 표현으로 보인다. 썰렁하긴 하지만 웃자고 한 말일 수 있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여야 하겠지만. 유은혜 장관과의 성희롱 논란 대화도 그렇다. 그는 가끔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누구나 시의적절한 말만 하면서 살 순 없다. 엉뚱한 말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올 수 있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조심해야 한다.

일련의 막말 퍼레이드는 앞뒤 문맥이나 상황으로 보아 큰 문제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 선거 전략상 침소봉대하여 물고 늘어짐으로써 상대방 진영에 막말 프레임을 씌우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항변이 있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이는 현명한 전략이라 보기 힘들다.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지금은 타협하고 협치해야 할 때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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