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배워라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물이 들어간 꼬맹이의 귀에서 이명현상이 생겨 피리소리가 났다. 꼬마는 옆의 친구에게 귀를 맞대게 하고는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무슨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아이는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이번엔 여러 사람이 함께 자는 시골 주막에서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았다. 견디다 못한 옆의 사람들이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며 불끈 성을 냈다.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스승의 옥편’이란 책에서 읽은 글이다. 정민 교수는 간결한 문장으로 이 내용을 정리했다. “이명은 저만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골이는 남은 들어도 저는 못 듣는다. 제게 들리는 것을 남이 못 들으니 안타깝다. 남은 들었는데 저만 못 들으니 성을 낸다”

그렇다. 이명은 자기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인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다. 이처럼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내린 결정만이 옳다고 하는 부류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만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얼마나 많은가.

코골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나의 잘못, 나의 단점을 알고 있는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다. 남들이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순간 길길이 화를 낸다. 평생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묻은 티끌과 때는 전혀 보지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엔 이명과 코골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 천지다.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나만 잘났다고 하는 이명 증상을 가진 사람도 많고,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코골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이 정도 부동산투기와 이쯤 위장전입은 관례였다고 하며 다른 사람들이 눈감아 주기를 원한다. 절세로 위장한 탈세를, 자녀의 특혜채용을, 이중국적 취득을 ‘남들 다하는데…’라며 합리화한다.

주구장창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은 지독한 이명에 걸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지않는 사람은 심한 코골이환자다. 둘 다 소통의 부재 때문에 생기는 사회병리다. 하나는 제 귀에만 들리고 남은 못 듣고, 다른 하나는 남 귀에는 들리는데 저는 못 듣는다니 불통도 이만저만한 불통이 아니다.

정작 이명과 코골이를 가진 사람 자신은 문제점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내가 행한 잘못을 다른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음을….

허물이 있어도 이를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잘못이라고 했다. 공자 말씀이다. 출발은 소통이다. 이명처럼 나는 듣지만 남들은 들을 수 없다거나 코골이처럼 남은 듣는데 나는 들을 수 없다면 곤란하다. 나만 옳다는 독불장군, 나의 결정이 진리라는 외골수, 내가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생각이 허물이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일수록 나의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나의 코골이를 바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을 갖추는 지름길은 고전이다. 왜냐하면 고전에서 이명과 코골이 환자들에 대한 처방 뿐만 아니라 올바른 방향까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어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남이 나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먼저 걱정하라고 했다. 이명과 코골이에 대한 명확한 처방 아닌가.

요즘 나라가 어수선하다. 걱정하는 국민들을 뒤로 하고 여야 정치인들은 말꼬투리잡기에만 혈안이다. 막말 논란으로 국민들은 다들 귀를 틀어막을 지경인데도 그칠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이명증 환자가 아닌지, 코골이 환자가 아닌지, 아니면 둘 다의 증상을 가져서 바로 수술대에 올라야하는 환자는 아닌지...

그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국회에서 고전강독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하라고 외치고 싶다. 고전의 바다에 밀어넣어 억지로라도 고전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고 싶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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