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주체의 심리악화

발행일 2019-06-05 16:09: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경제주체의 심리악화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우리는 종종 경제는 심리라는 말을 한다. 가계나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좋아지면 나빴던 경기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만, 심리가 나빠지면 좋았던 경기도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과도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면 투자와 소비 등 실물경제 활동이 크게 제약되면서 자기실현적 위기 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1997년 태국의 외환위기가 아시아 외환위기로 발전된 것이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한 것은 모두 지금의 상황이 더 큰 위기로 발전할 것이라는 심리 즉, 자기실현적 예언이 실제로 구현된 데 큰 원인이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거의 모든 국가가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관리하여 안정적인 경기 흐름이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경기 둔화와 경제 주체들의 심리 악화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 악화가 장기 지속되면서 혹여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경제가 위기에 봉착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서 매월 발표하는 경제심리지수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경제심리지수는 가계와 기업으로 대표되는 민간 부문의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 다시말해 심리를 종합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이 지수가 2017년 말부터 지금까지 장기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년 동안 대외 여건의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국내 경기가 나빠지니 당연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처럼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나빠지는 것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잇따른 경기 대응책 제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책 당국이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존 F. 케네디의 말처럼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는 거기에 가장 깊이 관여한 사람조차도 알 수 없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부분이 항상 있기 마련’이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시장의 의사결정 기능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정책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채택된 정책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할 때는 시장과의 의사소통이 곤란해질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 즉 정부의 정책 대응이 오히려 시장을 위축시켜 경제 주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부정적인 편견을 불러와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이른바 낙인효과를 불러올 가능성이 큰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정책들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을 지켜보면 이러한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대책, 소득주도성장 실현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나 조선업 등 산업 구조조정, 공유경제 활성화나 인터넷 뱅킹,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증세론 등등 최근 우리 정부의 정책 대응이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러다 보니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에 대해 정책 당국이 어떨 때는 시장메커니즘의 역할과 그것이 주는 인센티브,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의미, 소득분배의 결정 방식 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고, 어떨 때는 그렇지 못한 것 같은 정책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서 시장에 혼란만 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고 낙인효과의 싹이 트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은 ‘시장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정부도 실패한다. 시장의 실패는 불경기나 인플레를 유발할 정도지만 정부의 실패는 훨씬 더 큰 희생을 초래한다’고 한 바 있다. 정책 당국이 시장의 결점만을 근거로 경제 주체들에게 시그널을 준다면 이는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다. 스스로 낙인을 찍어서야 하겠는가.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