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서 쓰면 안 되나요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주위를 둘러보면 이제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곤 한다.

한때 우리와 일상을 함께 했던 물건인데, 어느 순간 고장이 나거나 쓰임새가 없어져 구석으로 밀려난 채로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진 것들이다.

몇 주 전, 병원을 시작하면서 함께 했던 오래된 카메라가 고장 신호를 보내왔다.

십여 년간 환자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이 사진들을 가지고 생활했던 나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성형외과에서 사진은 차트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환자의 얼굴이나 수술 부위를 정확하게 사진에 담아서 보관하고 수술 전후의 변화된 모습을 판단하기도 하고 또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이 환자들의 모습을 기억하는데 기준이 되는 것이니 환자들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그래서 한 번 카메라와 렌즈를 결정하고 나면 되도록 같은 조건의 사진이 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잘 바꾸지 않는다.

카메라 회사마다 색감과 조건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카메라가 바뀌면 조건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장이 난 것을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손을 대 보았지만, 예전과 달리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수리 센터에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이 카메라는 이미 출시된 지 너무 오래된 것이라 부품도 없어 어쩌면 고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답을 듣게 되었다.

카메라를 잘 안다는 지인들에게 물어보아도 오래된 카메라는 한 번쯤 바꾸어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답을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새로 카메라를 장만해야 하나 생각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어서 고쳐서 쓸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일단 점검만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수리 센터로 가지고 갔다.

수리기사의 간단한 점검 후, 카메라와 렌즈를 맡기고 며칠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를 기다렸다.

‘이번 기회에 새 카메라를 장만해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어떤 카메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다행히 카메라에는 문제가 없고 렌즈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카메라와 함께 작동하는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모터가 노화되면서 고장이 난 것이라고 하였다.

고칠 수 있냐는 질문에, 수리에는 문제가 없고 함께 오랫동안 카메라 속에 쌓인 미세한 먼지 가루도 함께 제거해서 수리하겠다는 답에 마치 어려운 환자 한 사람을 해결한 것 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리기사로부터 사용상 주의사항을 설명을 듣고 적은 금액을 수리비로 지불하고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이리저리 손을 보았던지 예전보다 더 매끄럽게 마치 새것처럼 작동하는 카메라를 보고, 하마터면 고쳐보지도 않고 새 카메라로 교체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손을 오랫동안 탄 물건들은 어찌 보면 내 분신과도 같다. 이런 물건들과 이별하기보다는 내 주변에 오랫동안 함께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집을 옮길 때마다 가구나 가전제품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도 좋고, 리모델링을 하거나 수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멀쩡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작게는 나를 둘러싼 기억들과 이별하는 것이고 더 크게는 우리의 환경에 좋은 일은 아니다.

특히 요즘 생산되어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보면, 고쳐서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듦새나 내구성이 예전의 것보다 떨어지는 물건들이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고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비용이 더 싼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일단 고장이 나면 버리고 새로 물건을 사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이런 물건들이 모여 우리 주변에 조금씩 쌓이면서 우리의 미래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씀씀이, 우리 주변에서 잊혀져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는 물건들을 조금이나마 애정을 가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래된 물건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은 물건을 제조하는 기업의 입장에는 손해가 나는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몇몇 기업들이 자신이 생산되는 물건들을 재활용하고 재생하면서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각자도 환경에 이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