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민희재미수필가
▲ 성민희재미수필가
입사를 6개월 앞 둔 아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나섰다. 동남아 쪽을 둘러보고 한국 여행도 하겠다고 했다. 인생은 긴데. 세계 곳곳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며 집 떠나는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배웅했다.

아들은 어느날은 베트남에서, 또 어느 날은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나라가 바뀔 때마다 이메일을 보내왔다. 전화도 되지 않고 연락처도 없으니 어느 곳에서 밥을 먹는지 잠을 자는지 어떤 사람이랑 어울리는지 답답하지만 그저 믿는 마음으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어느날 토론이 벌어졌다. 아들에게 물었다. 미국과 영국이 싸우면 어느 나라를 편들겠냐고. 당연히 미국이라고 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또 물었다. 만약에 한국과 미국이 싸우면 어쩌겠냐고. 아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싸우는 이슈에 따라서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것인지, 한국 사람인 동시에 미국사람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들은 지난 몇 달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유스호스텔을 묵었다.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 청년들이 모여 각자 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제일 먼저 묻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름보다 국적을 더 궁금해한다. 당연히 아들은 아메리칸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모두 고개를 갸웃하더란다. 너는 동양인이지 않느냐고.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쳤으니 당연히 미국사람이라고, 아무런 느낌 없이 말했더니 너의 부모님은 어느 나라 사람이었냐고 또 묻더란다. 원래 한국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시민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너는 한국 사람이라고 못을 박아버리더란다. 아들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쉽고 한국문화보다 미국문화에 익숙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시선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 또래의 사촌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리 한국말을 잘 해도 미국인 취급을 하더란다. 아들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한국 아이들 속에서 시간이 갈수록 생각과 문화의 차이를 발견했다. 외국인은 아들을 한국 사람으로 인정하는데 오히려 한국 사람은 외국인이라며 더 어려워했다. 미국에서는 전혀 가지지 않았던 정체성의 혼란을 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느꼈다. 아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미국에서 사는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과연 미국에 온 것이 잘 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남편 회사의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캐나다의 벤퍼 스프링스 호텔에서 며칠을 보낸 후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였다. 각 주에서 온 네 쌍의 부부 여덟 명이 테이블에 함께 했다. 우리 옆에는 미조리주의 어느 시골에서 왔다는 노부부가 앉았다. 그들은 동양인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등장을 신기해했다. 부인은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엘에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태어난 나라가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엘에이라는 말에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다. 코리아라는 내 말에 또 North? South? 했다. 음식이 나오자 “너희들 음식 괜찮니? 입에 맞니?” 미국 온지 40년이 다 되었다고 누누이 설명 했는데도 여전히 걱정을 했다. 우리가 미국화 되어 불편이 없다고 말해도 이 사람들 눈에는 도무지 미국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사람일 뿐이었다. 어린아이 보살피듯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들 걱정이 되었다. 우리 2세가 능력이 있다고 한들 주류 사회에 들어가서 어떻게 이 벽을 뚫고 우뚝 설 수 있을까. 그들의 눈에는 외국인인데 싶었다.

미국 스타디움에 태극기를 올린 방탄소년단의 공연을 보며 생각한다. 그들이 던지는 메세지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의 춤과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의 모든 젊은이를 하나로 사로잡는 힘은 그들의 화두를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시대가 주는 정서는 국적을 따지며 나라를 들먹일 수준이 아니다. 이제 세계는 물리적 거리나 장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방탄소년 그들의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이듯이 내 아이들의 무대도 미국이 아닌 전 세계다. 방탄소년단에 환호하는 노랑머리 청년들을 보며, 아이들이 내 나라 내 땅에서 주인 노릇하며 살 수 있도록 해줄 걸 하던 좁은 마음을 날려 보낸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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