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덕률대구대학교사회학과 교수
▲ 홍덕률대구대학교사회학과 교수
지난 5일이었다. 시국성명서 하나가 등장했다. ‘문재인은 연말까지 하야하라. 내년 4월 총선 때 대통령선거도 함께 치러야 한다.’ 내세운 이유는 이랬다. ‘문재인정권은 주체사상으로 청와대를 점령했다. 대한민국이 공산화돼 지구촌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를 맞이했다.’ 주인공은 전광훈 목사였다.

그는 한국기독교총연합의 대표회장이다. 올해 2월에 취임했다. 물론 한국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단체도, 목사도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숱한 비리와 물의가 계속되면서 주요 교단들이 대부분 탈퇴했다. 해체 운동도 이미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럼에도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고, 그렇게 잘못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그의 문제 발언과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대선을 앞둔 때였다. ‘이명박에 투표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지옥 보내겠다는 뜻이다. 작년 12월에는 이런 말도 했다. ‘3·1절 전까지는 기필코 문재인을 끌어내겠다.’ 황당한 말들이지만 그때는 한기총 회장에 취임하기 전이었다.

5월5일의 일이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이 대통령되면 장관 하겠는지 물어왔다. 안하겠다고 했다.’ 설교 중에 한 말이었다. 사실이면 황교안대표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다. 황대표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전광훈 목사가 설교시간에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또 있다. 앞자리에 앉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가리켜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라. 그래서 임종석을 꺾어라. 교인들로 하여금 선거운동해 돕도록 하겠다’ 선거법 위반을 대놓고 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2017년 대선 때에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들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국회는 빨갱이 자식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빨갱이 국회의원들 다 쳐내야 한다.’ 전라도를 가리켜 빨갱이라고도 했다. 예배라고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정당의 전당대회와 흡사했다.

그의 위험한 일탈은 기어코 국경까지 넘을 태세다. 문재인정부가 한국 교회를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미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민주당에 보내겠다고 했다. 세속의 타락한 정치인이나 수준 이하의 선동가들도 이러기가 쉽지 않다. 한국 기독교가 조롱받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크게 네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헌법의 정교분리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 종교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둘째, 극단적인 색깔론에 기대 현실정치에 개입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스스로 한 진영의 투사를 자처하는 그에게 신도들은 그의 권력투쟁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에 불과할 뿐이다. 이 역시 선거법이 금하고 있는 심각한 일탈이다.

셋째, 직접 권력을 창출하고 스스로 권력이 되겠다는 것은 기독교 정신과도 어울릴 수 없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다 순교한 독일 신학자 본회퍼를 따르겠다는 말까지 했다는데, 이는 그를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스스로 세속권력이 된 종교가 인류에게 얼마나 큰 죄를 범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넷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기독교의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세속보다도 더한 증오의 말을 뱉고, 사회를 분열시켜 싸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빨갱이, 진격, 타도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와 막말들이다. 사랑, 정의, 평화, 생명, 어느 것도 그의 생각과 말에서 읽을 수 없다. 증오와 결합한 종교가 역사를 어떻게 유린해 왔는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정치와 사회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피멍들게 할 위험한 일탈이다. 탄식하고 있을 선한 기독교인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행히 한기총 안에서 우려와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미 꾸려졌고, 전광훈 목사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또 다른 기독교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어제 입장을 발표했다. ‘거짓 선지자의 선전선동’이요 ‘반기독교적 행위’라고 분명히 했다. 그의 ‘반복음적, 반신학적, 반지성적 주장’에 참담하다면서, ‘더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도 했다. 앞으로도 정치권과 기독교계 모두, 이것은 아니라고 엄중히 선언해야 한다. 한국 정치를 위해서기도 하고 한국 기독교를 위해서도 그렇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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