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 최영미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 최영미

나는 이 날을 기다려왔다/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강인한 그들/ 호나우두 아이마르 제라드 그리고 박지성/ 너희들을 우리는 기다려왔다/ 컴퓨터를 끄고 냄비를 불에서 내리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내가 텔레비전 앞에 앉을 때,/ 지구 반대편에 사는 어떤 소년도/ 총을 내려놓고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중략)// 그들의 경기는 유리처럼 투명하다/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 수천만의 눈이 지켜보는 운동장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으며, 위선은 숨을 구석이 없다// 진실된 땀은 헛되지 않을지니,/ 정의가 펄펄 살아 있는/ 여기 이 푸른 잔디 위에/ 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 시집『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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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 선수 출신 축구광으로 알려진 시인의 시집 『돼지들에게』에게는 축구 관련 시가 9편이나 있다. 이 시는 축구 자체의 미학을 찬양하고 있지만 실은 축구를 도구로 세상의 위선을 부각시키고 있다. 축구가 반드시 정의로운 것도, 정의가 축구장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축구에는 ‘서로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놀며 사랑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기막힌 명품 골에 보내는 환호나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는 아슬아슬한 공에 대한 탄식에도 정의는 있다.

알제리 대학 팀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던 카뮈는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뒤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윤리나 의무란 축구선수로서 내가 지녀야 할 윤리나 의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축구를 통해 배우는 인간의 도리란 다름 아닌 스포츠정신이리라.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닌 까닭에 팀스피릿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개인기가 탁월하더라도 팀워크가 가동되지 않고 팀스피릿이 가라앉아 있으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다른 선수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역시 스타플레이어의 탁월한 개인기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손흥민이나 이번 청소년 월드컵에서 맹활약중인 이강인에게 거는 기대 또한 다르지 않다. 한 가지 께름칙한 교훈이 있다면 축구는 우리에게 ‘과정’ 보다 ‘결과’의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패배하면 헛일이고, 시종 밀리는 경기를 펼치다가도 운 좋게 발끝에 걸린 한 방으로 승리를 쟁취할 수도 있는 경기 또한 축구다. 승부세계의 냉혹함이다. 지난 세네갈 전의 경우는 몇 차례나 “졌네, 졌어” 패배를 예감하는 순간 이를 뒤집고 기사회생하여 승리를 안겨주었기에 전에 맛보지 못한 희한한 감격을 경험했다.

공은 둥글고 그 공은 어디서 날아오고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르기에 그라운드에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문정희 시인은 시 <축구>에서 ‘언어가 아닌 것을 주고받으면서 이토록 치열할 수 있을까/ 침묵과 비명만이 극치의 힘이 되는/ 운동장에 가득히 쓴 눈부신 시 한 편/ 90분 동안 이 지상에는 오직 발이라는/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다’고 했다. 예전엔 여성들에게 축구 이야기는 참으로 지겨운 소재였으나 인류 보편의 기재가 된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진실된 땀은 헛되지 않을지니’ 아무쪼록 이번 청소년 월드컵 남은 경기 ‘정의가 펄펄 살아 있는 여기 이 푸른 잔디 위에 순간의 기쁨과 슬픔을 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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