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참으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진보와 보수는 일제하 임시정부에서도, 해방정국에서도 ‘이념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그 정점이 6·25였다. 북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고 무고한 생명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갔다.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이 끝나도 이념 전쟁은 계속됐다. 돌이켜보면 서로 죽이고 죽는 생사를 건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젠 최루탄과 보도블럭 대신 말로 하는 전쟁이 대세가 됐으니, 평화시대가 온 것인가.
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것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의 집결이라며 김원봉이 조국 광복에 공헌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기념사가 다시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에서 평가가 대비되는 채명신 장군의 공적을 추켜세우고는 ‘이제 이념의 진보와 보수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김원봉의 공적을 언급한 것이다.
김원봉은 6·25때 월북해 김일성 정권에서 노동상을 지낸 인물이다. 비록 그의 조선의용대가 광복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6·25 전사자 유족들이, 천안함과 연평해전 사망자 유족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충일 추모 현장에서 김원봉을 불러내는 것은 참으로 부적절했다며 보수 세력들은 펄쩍 뛴다.
문 대통령이 과거청산을 국정의 제일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쾌한 증거들이다. 경제문제, 북핵문제, 사회갈등 문제 등 지금의 국가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앞서 과거 청산부터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보수와 진보 간 이념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편 가르기 할 소지가 충분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김원봉 소환은 “이제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시대는 지났다”는 대통령의 의지와는 정 반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훈구파 중심의 반정 세력에 포위된 중종은 마침 등장한 사림파의 신예 조광조에 마음이 쏠렸다. 왕의 신임을 업은 조광조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훈구파를 몰아내고 국정을 혁신하려 한다.
조광조는 반정 정국공신이 너무 많다며 공적을 새로 심사해 무자격자의 공훈을 박탈한다. 117명이나 되는 정국공신 중 76명의 공훈을 박탈하고 지급한 토지도 몰수한다.
그러나 훈구파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사림파가 설쳐대는 꼴을 못마땅해 하던 훈구세력들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역심을 품었을 리 없다는 대신의 충고에도 중종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왕도 조광조의 개혁 드라이브에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광조는 귀양지에서 1달 만에 끝내 사약을 받는다. 36살 조광조만 죽은 것이 아니다. 그가 척결하려던 기득권이 다시 살아났고 혁신하려던 조선의 역사는 후퇴했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중종 14년의 일이다.
옛날에는 이념 전쟁에서 이기면 반대파를 합법적으로 때려죽이거나 사약을 내렸다. 그러니 ‘막말’이라며 상대와 말로만 정쟁을 벌이는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평화시대를 맞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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