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 문인수

발행일 2019-06-16 16:05:5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축구 / 문인수

파죽지세의 응원이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옆의 사람을 와락, 와락, 껴안고 폭발적으로 낳는 열광이 '붉은 악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지금∼ 오 천 년 만에 처음 그늘진 데가 없다.// 가을날의 내장산이나 설악의 바람같이 번지는 춤, 우는 이도 많다. 저런 표정에도 곧 바로 마음이 건들리는,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 다스리지 않았으나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것이다.//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 전국의 인구가 모처럼 다 몰려나와 있다. 뜨겁게 펼쳐지는 씻김굿 한 판이,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이다.

- 시선집『풀잎의 말은 따뜻하다』(한국시협, 2002)

17년 전 월드컵의 감동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 목청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그땐 정말 구석구석 ‘처음 그늘진 데’ 없이 함성으로 온 반도를 뒤덮었다. 껴안고 울고 소리쳤던 그 영광과 환희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모처럼 일요일 새벽 그 감격이 재현될 뻔 했다. 다시 ‘그늘진 데’ 없이 결집된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응원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준우승도 어마어마한 쾌거였고 우리 축구의 미래에 청신호를 켜준 희망의 메시아였다.

축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다. 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발로하는 단순한 운동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몸에 남아있는 원시시대 사냥꾼의 생존본능과 유전자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렇다. 먹이를 두고 전력으로 질주했던 집단사냥의 변형된 모습이 축구다. 그래서 세계인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며, ‘제3의 길’로 유명한 앤서니 기든스는 “세계화란 곧 축구다”란 말까지 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은 축구를 충분히 즐겼고 세계화에 기여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저 흰 출구’에서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다시 ‘불의 뿌리가 널리 동색이다’ 공만 잘 차준다면 모든 게 순조로울 것 같다. 고양된 민심에 축포를 쏘아 ‘눈물이 기름이어서 잘 타오르는’ 감격을 안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 그래서 이 ‘축구’가 지난 세월의 모든 과오와 오만과 편견들을 일거에 씻어줄 한 판 ‘씻김굿’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기본적인 전술이나 룰도 모른 채 그저 가만히 앉아서 환희와 감격을 누릴 수는 없다.

평소의 관심과 응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기를 펼치는 동안 인간의 몸은 발이라는 부위만이 유효하고 간간히 이마가 허용될 뿐이다. 90분간 모험의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관전자의 피까지 함께 끓어오르게 한다. 필드에서의 유일한 가치는 공이다. 선수들은 그 유일한 가치가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공은 둥글다. 지구도 둥글다. 우리의 내일도 둥글다. 축구는 인생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총칼이 없는 전쟁에서 우리는 그렇게 궁극의 평화를 꿈꾼다. ‘해방이 참 광활한 대륙’으로 가자.

‘세계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비정치적 영역인 스포츠를 통해 구현되리란 기대는 언제나 유효하다. 2022년 카타르,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북중미가 공동개최하는 2026년 월드컵에서도, 남북한(혹은 통일 한국)이 공동개최할지도 모를 2030년까지도 쪽 이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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