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초능력/ 이장욱

오래전에 우리는 순서대로 태어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볼 수 있고/ 흘러간 시간을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다/ 수많은 사건들을 창조하자 스르르 얼굴이 변하고/ 누구나 문득 살인자의 밤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먼 곳에서 잠든 채/ 새로운 과거를 생산했다/ 어제보다 나쁜 자화상을 발명한 뒤에는/ 지난해의 잡담을 반복하고/ 희미한 손바닥으로/ 새벽에 내리는 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느낄 때에는/ 아침 뉴스의 화면을 향해 드디어/ 짐승의 욕을 내뱉을 때에도/ 우리는 매일 그림자를 창조할 수 있고/ 조용히 그림자와 손바닥을 마주할 수 있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비명을 지를 수 있고

— 월간 《현대문학》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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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사나운 짐승일 수 있다. 세상에 고약한 사람들이 널려있지만 내가 가장 고약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세상에 이중인격자를 많이 보지만 내가 바로 그 두 얼굴의 야누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떠한 위험한 동물도 사람과 친숙해지고 길들여지면 반려 동물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인간도 스스로를 늘 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언제 사나운 짐승처럼 포악해질지 모른다. 어느 순간에 고유정 처럼 ‘초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문득 살인자의 밤을 맞을 수 있다’

인간이 고약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이기심 때문이다. 세상에 가장 나쁜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지 않은가. 거울에다 얼굴과 마음을 비춰보면서 스스로가 사납고도 고약한 짐승이 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람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인간이다. 인간의 이기와 욕심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그 죽음조차 생명에 대한 배려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잔인함에 이빨을 떨게 한다. 인간을 향해 저질러지는 잔혹사도 그러하다. ‘어제보다 나쁜 자화상을 발명한 뒤에는 지난해의 잡담을 반복하고’있다.

세계 도처에서 태연하게 저질러지는 끔찍한 살인극은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살인이 장난처럼 자행되고 있음을 경악스럽게 목격한다. 맹수인 사자도 자신을 위협하거나 생존을 위해 먹이를 구할 때가 아니면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동물은 제 배가 채워지면 더 이상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데 반하여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처하면서 때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납고 위험한 존재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비명을 지를 수 있’는 동물이 인간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영혼에 심어 놓으신 선한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곧장 금수보다 못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사납고 무서운 맹수로 전락해 버린다. 인간의 영혼에 양심이 떠나가고 악신이 들면 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히틀러나 피노체트, 이디아민이나 폴 포트 같은 이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기도 한다. 나중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성과 감성이 마비상태에 빠져버린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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