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덕률대구대학교사회학과 교수
▲ 홍덕률대구대학교사회학과 교수


잠시 32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1987년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였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이듬해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뒤 출범한 5공화국 정권이었다. 정통성이 없으니 임기 내내 반대와 저항에 시달렸다.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 삼청교육대와 야당 탄압이 아니고서는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임기 내내 정치 불안이 일상화됐다.

1987년은 시작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컸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로 모아졌다. 1972년 유신 때 폐기된 대통령 직선제를 살려내는 것이 민주화의 첫 발이라고 본 것이다.

1월14일이었다. 뜻밖의 사건, 아니 5공화국 정권을 가장 정확하게 상징하는 사건이 터졌다.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조사실에서 사망한 것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치안본부의 발표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었다. 턱밑까지 차 있던 민주화 요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4월13일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른바 ‘4.13 호헌조치’였다. 그러면 선거는 해보나마나였다. 집권당이 지명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대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 성공회 등 종교계도 팔을 걷어부쳤다. 학계 지식인들도 나섰다.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구호가 아스팔트를 덮었다. 5월18일에는 천주교의 김승훈 신부가 경찰이 박종철 학생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했다고 폭로했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항쟁 7주년 미사에서였다.

그렇게 1987년 6월은 시작됐다. 그러나 역사는 냉혹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무고한 청년이 희생되는 사건이 또 터졌다. 연세대학교 이한열 학생이었다. 6월9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학교 정문 앞에서였다. 시민의 분노와 탄식이 하늘을 찔렀다. 세계도 한국의 사태 진전에 주목했다.

이튿날 10일은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는 육사 동기면서 12·12 쿠데타의 또 다른 주역인 노태우 대표가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예정된 대로였다.

같은 날,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전국적으로 진행됐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였다. 저녁 6시에는 도로의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버스 승객들은 차창 밖으로 흰 손수건을 흔들기도 했다. 민주헌법 쟁취 운동에 동참한다는 표시였다. 거리의 상인과 고등학생까지 합세했다. 그들은 시위 참여자에게 마실 물과 도시락을 가져다주었다. 서울과 광주와 대구가 다르지 않았다.

이후에도 시위는 매일 저녁 이어졌다. 그리고 26일이 되었다. 국민평화대행진 시위가 있었다. 전국 37개 도시에서였다. 정권은 6만 명의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등 총력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10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넥타이 부대들의 참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연행된 학생과 시민은 모두 3천467명이었다.

결국 집권당의 노태우 대통령후보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자유도 약속했고, 야당 지도자의 자유로운 정치활동도 보장하겠다고 했다. ‘6·29 선언’이었다. 한국 사회는 그렇게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청년학생과 시민들이 온갖 고통과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위대한 역사였다.

어느덧 32년이 흘러 우리는 지금 2019년 6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 때의 희생과 염원이 어떻게 열매맺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마음이 썩 편치 않다. 국민의 삶의 질은 얼마나 좋아져 있는지도 따져 본다. 역시 착잡하다.

저급한 색깔론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다. 미래 세대인 청년들이 미래가 없다며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초저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로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수준 이하의 막말로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있어서다. 87년 이전의 구태와 반민주 악습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맹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야 어찌 되든 자신의 정치생명만 이어갈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이 여의도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애민은 없고 당략의 깃발만 나부끼고 있어서다. 증오와 선동이 토론과 정책을 압도하고 있어서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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