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에게 묻다/ 고안나

담장 밖으로 내보낸 입들/ 몸을 대신한 아슬아슬한 마음이라면/ 무슨 말로 心中 대변할 수 있을까/ 곡예사처럼 휘청/ 구중궁궐 뛰어넘는 외줄타기/ 밤새 불어재낀 나팔/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말(言)들/ 불안정한 목청 다듬어/ 어디로 보내고 싶은 걸까/ 알 수 없는 힘이 밀어붙인 침묵의 소리/ 닫힌 귀 열릴 때까지/ 도톰한 입술 쉴 새 없이 멀어지는 골목길/ 저 수많은 입들 빌려/ 하소연 하고 싶은/ 아는 듯 모르는 듯/ 느닷없이 밟고 지나가는 빗줄기

- 시집 『양파의 눈물』 (시와에세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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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는 담쟁이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덩굴 식물이다. 뜨거운 염천 위로 붉디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 꽃이 유월의 하늘아래 피기 시작하여 시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선우는 <능소화>에서 “이글거리는 밀랍 같은, 끓는 용암 같은, 염천을 능멸하며 붉은 웃음 퍼올려 몸 풀고 꽃술 달고 쟁쟁한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능소야 능소야”라면서 붉디붉은 징을 떠올린다. 정끝별은 <여름 눙소화>에서 “오뉴월 불 든 사랑을 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라고 경탄했다. 그 능소화가 ‘곡예사처럼 휘청 구중궁궐 뛰어넘는 외줄타기’를 시작했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의 온도가 능소화 붉은 꽃잎에 그대로 전도되었는지 빛깔은 가히 뇌쇄적이다. 색정과 욕망의 요염한 정서가 듬뿍 깃들어 있다. ‘저 수많은 입들 빌려’ ‘하소연 하고 싶은’말은 무엇일까. 능소(凌霄)는 ‘하늘을 능멸하는’ 이란 뜻이다. 하늘에 닿을 듯 뻗어간다고 해서 ‘하늘을 이기는 꽃’이란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화사함과 고고함을 뽐내는지라 ‘밤을 능가하는 꽃’으로도 불린다.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또 얼마나 높이 자라났으면 하늘을 눈 아래로 본다고 하였을까.

능소화의 원산지는 짐작한 바와 같이 중국이다. 별칭 ‘구중궁궐의 꽃’에 얽힌 중국의 전설도 있다. 그리고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라고 한다. 낙화의 깔끔한 속성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구질구질하게 나무에 매달려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서 명예를 지키려는 기품을 보았으리라. 능소화의 이러한 낙화의 특성은 선비의 지조를 연상한다고 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양반집 마당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민의 집에서 능소화를 심고 가꾸면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는 풍문도 있다.

그렇다면 능소화는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접촉을 피해야할 상전 같은 두려움이 아닌가. 그러한 풍문 때문인지 오늘날까지 능소화에는 경구가 따라다닌다. 능소화 꽃가루엔 독이 있어 함부로 집안 뜰에 심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그것이다. 실제로 지난 해 한 공원의 꽃을 설명하는 팻말에서 실명을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경구를 보았다. 어쩌면 평민들 스스로 그 화를 피해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유포한 속설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러나 관계기관에서 능소화 꽃가루를 연구한 결과, 독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눈에 상처를 내기도 힘들며 꽃가루가 공중에 날릴 염려도 없다고 했다. 떨어진 꽃에서 꽃가루를 채취해 일부러 눈에 문지르지 않는 이상 아무런 위해요인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밤새 불어재낀 나팔/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말(言)들/ 불안정한 목청 다듬어/ 어디로 보내고 싶은 걸까’ 저 골목길의 수많은 ‘하소연’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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