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 오인태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한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 돋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 먹는 세상// 밥맛 없다/ 참, 살맛 없다

- 시집『혼자 먹는 밥』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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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조사에 따르면, 혼자 사는 가구가 전체가구의 27.2%인 520만 가구를 넘어서며 2인 가구 수를 앞질렀다. 1인 가구는 앞으로 증가하면 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Solo Economy’라는 사회 현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곧 저출산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여행하는 것이 대세라는 요즘, 혼자 밥 먹는 일이 대부분인 내 처지에서는 더욱 쓸쓸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이사를 하면서 6인용 식탁을 내다버리고 지금은 식탁 없이 탁자에서 홀로 밥을 먹는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는 현상’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서 그 가족의 성원을 ‘식구’라고 부른다. 요즘은 식구끼리도 밥상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다. 현대인의 핵가족화와 가족 구성원 간 생활 시간대의 차이로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공동체가 무너져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다. ‘밥상 차리는 시인’으로 유명한 시인이 ‘밥상’을 통해 ‘식구’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시인은 밥상을 통해 가족 공동체가 복원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식사’가 팍팍하고 무미건조한 삶을 바꿔줄 수 있는 대안이란 뜻에서다. 오인태 시인은 “사람들이 시와 밥상을 통해 위안 받았다면 아마 그것은 일상의 건재함에 대한 안도감 때문일 것”이라며 “힘겨운 시대에 팍팍한 현실을 헤쳐 나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녁시간은 한 그릇의 따뜻한 위안과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도 혼자인 사람은 마냥 쓸쓸하기만 해야 할까. 혼자면 또 혼자 나름의 삶의 양식이 존재하고 그걸 견디며 즐길 수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오래전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한국판으로 만든 ‘결혼 못하는 남자’의 남자 주인공 지진희와 상대 여주인공 엄정화도 그랬다. 언제나 마음대로 떠날 수 있고 시간과 노동에 쫓기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점은 독신생활의 매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선행조건이 있다. 우선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주위의 친구들은 결코 가난한 독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외로움에 특히 강해야 한다. 걸핏하면 우울해지는 성격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리고 한없이 너그럽고 느긋해야 한다. 주위의 시선이나 호기심에 쉽게 흔들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혼자의 삶이 가족과의 오순도순 누리는 삶보다 결코 나을 수는 없다. 혼자 밥 먹는 세상은 밥맛이 없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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