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일이 기어이 터졌다.

국토교통부가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광역단체장들의 압박에 못이겨 동남권 신공항 문제를 국무총리실에서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말이 재검토지 실은 김해공항 확장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016년 세계적인 공항설계회사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김해공항 확장을 밀양·가덕도보다 더 적합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영남권 5개 시도가 이에 승복하고 합의했다.

---주무부처 국토부 제치고 총리실 왜 나서나

김해 신공항건설과 관련한 객관적 상황은 그동안 변화된 것이 없다. 그래서 국토부는 ‘김해공항 확장 백지화’ 요구에 대해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며 여러차례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입장을 바꿔 부울경이 주장해온 총리실 검증을 받아들였다.

국토부는 공항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책임있는 전문 부처다. 전문성 있는 부처를 제쳐두고 총리실이 왜 나서나 하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10여 년간 대구경북과 부울경이 입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해온 사안이다. 두 지역의 생존과 자존심을 건 갈등이 내재된 폭발성 강한 사안이다.

당장 대구경북에서는 정치권, 민간, 자치단체 구분없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는 반응이 터져나오고 있다. 분노, 배신감, 허탈 등의 반응이 여과없이 분출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20일 김현미 국토부장관과 부울경 단체장 3명의 합의문이 발표되자 즉각 공동입장 성명을 통해 “총리실 재검토 결정은 심히 유감이며 개탄스럽게 생각한다”고 성토했다.

이어 “국토부가 김해신공항 사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이제 와서 일부 지자체의 정치적인 요구로 재검토를 받아들인다면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동시에 영남권을 또다시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는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대구경북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1일 “내년 총선을 위한 새로운 적폐”라며 강력 반발했다. 이들은 “총리실이 특정 지역만의 선거를 위해 새로운 적폐를 시도한다면 500만 시도민이 총궐기해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검토 결정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대구시당은 ‘총리실의 재검증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명을 통해 “총리실은 과거 영남권 5개 단체장의 합의 정신에 맞게 국토부와 부울경 3개 단체장만 참여하는 검증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부겸(대구 수성갑)의원도 “김해 신공항은 총리실이 일방적으로 깰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을 깨서 가덕도 신공항으로 간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씻을 수 없는 갈등만 남는다고 말했다.

현정권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 동요가 감지되는 부울경의 표를 얻으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대구경북과 부울경을 갈라치기해 특정지역의 표를 얻으려는 작전이라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존 결정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부울경 민심을 의식해 시간을 벌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리실 검증을 핑계로 내년 4월 총선 전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대구경북 모든 수단 동원해 저지해야

영남은 이제 또 다시 대구경북과 부울경으로 양분될 위기에 처했다. 지방살리기의 중심 과제인 공항 건설에 정치논리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것 자체가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구경북은 이제 김해 신공항과 동시에 추진되던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전면 추진중단 등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배수진을 쳐야 한다. 만약 가덕도 신공항이 건설되면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은 내륙의 한 동네공항으로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김해 신공항 재검토는 동남권 공항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정부가 일부 지자체의 ‘떼법’에 밀리는 상황이 현실화돼서는 안된다. 떼법은 적폐다. 떼법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전국민이 정부의 향후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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