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생각하는, '왜 평화인가?'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 교수

69년 전 오늘이었다. 38선이 뚫렸다. 북한군이 남침해 온 것이다. 남한은 벼랑끝까지 몰렸다. 미국을 필두로 16개국이 남한을 도와 참전했다. 기사회생했다. 이번엔 북한군이 쫓겼다. 중국군이 북한을 돕겠다고 내려왔다.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커질 뻔도 했다.

좁은 반도는 피로 물들었다. 마을도 학교도 공장도 파괴되고 불탔다. 수많은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민간인 피해도 컸다. 어이없는 이유로 집단 학살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참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휴전 후에도 비극은 계속됐다. 부모, 배우자, 자식을 잃은 이들과 이산가족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남과 북의 사회와 체제도 멍들고 뒤틀리긴 마찬가지였다. 전쟁과 이후의 분단은 정상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물론, 정상사회를 만드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묶어서 ‘분단 비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들 수 있다. 북은 핵개발에, 남은 최첨단 무기 구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어야 했다. 남과 북 모두,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데도 큰 돈이 들었다. 일부만이라도 경제, 복지, 교육에 투자할 수 있었다면, 남과 북 모두에서 국민의 삶은 크게 좋아졌을 것이다.

둘째, 비용은 군사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반도는 전쟁을 끝낸 종전상태가 아니라 전쟁이 일시 중단된 휴전상태다. 언제든 전쟁이 다시 터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군사적 충돌은 수도 없이 많았고 툭하면 전쟁위기설도 불거졌다. 그 때마다 사회는 긴장했고 경제는 위축됐으며 국가신용도는 추락했다.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면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이다.

셋째, 민주화의 지체도 큰 비극이었다. 북은 봉건적인 세습왕조로까지 퇴행했고, 남도 오랜 세월 권위주의 하에서 신음해야 했다. 적대적 분단구조와 준전시 상황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언제든 제한할 수 있는 이유로 작동되어 왔다.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적대적 분단체제라고 할 수 있겠다.

넷째, 합리적인 문제해결도 어렵게 했다. 남과 북 모두에서 특유의 분단문화를 만들어 냈고, 그것의 핵심은 진영논리다. 입장이 다른 이들을 북에서는 반동으로 처단했고 남에서는 빨갱이, 종북으로 매도했다. 합리적인 문제해결은 어렵게 되고 사회는 뒤틀리게 되었다.

분단비용은 사실상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렇다면 적대적 분단구조를 해소하는 일은 무조건 당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훗날 밝혀진 경위가 어이없긴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1월 신년기자회견 때 했던 ‘통일은 대박’ 선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론 남북간 적대구조의 해소가 곧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이 궁극적인 목표겠지만 자칫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통일로 인한 효용과 함께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의 혼란과 비용까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통일로 가기 전 단계의 ‘평화체제’를 적극 고려하게 된다. 분단 상황 하에서라도 적대 관계를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것이다.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분단비용을 줄여가는 것이다. 핵 폐기와 군축, 화해와 왕래만으로도 남과 북 모두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적지 않은 재정을 경제와 교육과 복지를 위해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회복될 것이며, 각종 사회문제들도 바르게 해결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평화체제 위에서 공동번영의 틀을 세워가는 것은 절박하면서도 현실적인 과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남과 북 내부에서 평화와 통일을 원치 않는 세력일 것이다. 적대적 분단구조 하에서라야 자신의 이익과 권력이 보장되는 반평화·분단세력이다. 그들은 남과 북 내부의 강고한 기득권층이기도 하다. 주변 강대국들 중에서도 그런 세력은 넘쳐난다.

모처럼의 한반도 비핵화 평화 노력이 벽에 부딪쳤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다시 시작된 물밑대화로 꼭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섬세하면서도 지혜로워야 한다. 여와 야가 따로일 수 없다. 6·25를 ‘새롭게’ 기억하고 다짐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과거 냉전적 방식으로가 아니라 평화지향적 방식으로 6·25를 기억하고, 그 위에서 한반도 평화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고, ‘평화는 필수’다. 69주년 6·25에 새기는 이 시대의 지표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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