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객원논설위원
▲ 오철환객원논설위원


국토교통부장관과 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은 동남권신공항 문제를 총리실로 넘겨 재검토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이해당사자인 대구·경북을 소외시킨 상식 밖의 일방적 결정이다. ‘김해공항확장’은 중립적 전문기관인 파리공항관리공단의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2016년에 최종 확정된 정책이다. 그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연구결과에 승복하기로 사전에 합의했던 터라, 관련 광역지자체들은 나름대로 각기 불만을 토로하긴 했지만 전문연구기관의 결론과 사전약속을 존중하여 동남권신공항 문제를 근근이 봉합했다. 그랬던 부·울·경 단체장들과 정부가 국민 앞에서 한 서약을 보란 듯이 깨어버렸다. 정부는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에 굴복하여 기존 결정을 뒤집어엎기 위한 재검 절차에 착수하였다. 기가 차고 황당한 일이다.

정부의 신공항 정책결정은 일종의 행정계획 내지 국민에 대한 확언·확약이라고 볼 수 있다. 함부로 변경할 수 없는 불가변력이 존재한다. 물론 원시적 흠결을 이유로 취소 또는 변경하거나 후발적 사정을 이유로 철회할 수 있다. 이는 원시적 흠결을 치유하거나 후발적 사정 변경에 적응하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법률적합성과 공익적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 경우에도 원시적 흠결과 후발적 사정 변경이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만 하는 한계가 있다. 신공항 정책결정은 흠결이나 사정 변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당사자를 배제한 채 합의를 깨고 기존 결정을 변경하려는 책동은 위법·부당하다. 객관적 절차를 거쳐서 확정·공표된 정책을 합당한 사유 없이 변경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위법한 행위다. 법치국가에서 구체적 타당성 못지않게 법적 안정성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식량, 군대 그리고 신뢰라 했다. 그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군대이고, 둘을 버려야 한다면 군대와 식량이라고 했다.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정치가 바로 설 수 없다. 상앙의 이목지신도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고사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신뢰를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가치로 꼽아왔다. 미국에서도 신뢰를 깨는 거짓말은 정치인에게 금기다. 정치든 행정이든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결코 바로 설 수 없다.

기존의 확언·확약을 뚜렷한 이유 없이 변경하는 일은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작태다.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장래를 향하여 신공항에 관한 자기구속을 확언하고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정략적인 계산에서 대국민 약속을 깨는 행위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국가위해행위다. 이런 행태를 그냥 방치한다면 국가기강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파괴된다. 비록 상급기관이라 하더라도 권위 있는 연구기관에서 판단한 전문적 의사결정을 비전문가인 행정청이 정치적인 이유로 무책임하게 재검토하는 상황은 비상식적일 뿐만 아니라 위법적이다. 행정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점에서 위헌소지마저 존재한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행정이 중심을 잡고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동남권신공항 문제는 그 본질과 무관하게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역갈등을 조장한다. 부·울·경과 대구·경북을 갈라 칠 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을 갈라 치는 분열조장 사안이다. 수도권은 동남권신공항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관문공항은 인천공항 하나로 족하다. 인천공항을 세계 일등 공항으로 계속 키워가기도 힘에 부친다. 전국 어디에서라도 신속히 접근 가능한 교통망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세계 주요 공항을 연결하는 다양한 노선을 확보하고 항공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동남권의 관문공항은 불필요하다. 공항만 크게 지어놓는다고 관문공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거대 공항을 지어놓으면 활주로에서 고추말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지방공항은 근거리 노선에 집중하고 인천공항은 세계 일등 관문공항을 지향함으로써 상호 윈·윈 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수도권 사람들의 ‘선택과 집중’ 논리다. 기득권 항공계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갈등을 재점화시키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의 꼼수는 그 의도와 달리 자살골일 수 있다. 부·울·경의 표를 얻어 보려고 얄팍한 수작을 부리려다가 대구·경북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뜻하지 않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는 어리석음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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