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경기장 콜로세움, 전차경주장 히포드롬, 대목욕탕 등은 한때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반도를 넘어 대제국을 형성했던 로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지금은 이탈리아를 먹여 살리는 대표적인 관광자원이지만, 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도록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퇴폐와 향락의 문화유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우리 백성들은 투표권을 상실한 이래 국정에 관한 관심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예전에는 정치와 군사 모두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백성이 지금은 오로지 두 가지만을 열정적으로 쫓고 있다. 빵과 서커스를 말이다’라고 당시를 비판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서커스가 바로 퇴폐와 향락의 문화유산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만 가지고 로마제국이 멸망했다고 한다면 너무도 허무한 일이다. 아마도 이와 맞물려 다른 무엇인가가 로마제국 멸망의 실마리를 제공했을 것이다.
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한 데에는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팔아 부를 축적한 중소농민들의 역할이 컸다. 자비로 무장이 가능했던 이들은 로마군의 중핵이었고, 소비자로서 로마경제의 활성화와 더불어 납세자로서 로마재정을 윤택하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크고 작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토지와 광활한 식민지로부터 유입되는 값싼 농작물 등으로 인한 상품가격 폭락이라는 이중고 때문에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반면에 전쟁을 통해 획득하거나, 쇠락한 중소농민들이 내놓은 토지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매수하여 대토지를 소유하게 된 귀족이나 기사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다. 이로 인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은 이런 부작용을 예상치 못한 로마가 제국으로 커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성장통일 수도 있다. 문제는 성장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쇠락한 중소농민들의 생활보장을 위한 막대한 재정지출은 경제력 쇠퇴를 불러왔고, 충성심 강하던 중소농민들을 대신해 싸워줄 직업 용병들로 채워진 군대는 군사력이 약화되어 종국에는 로마제국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한 것도, 멸망하게 된 것도 지금의 중산층에 해당하는 중소농민들의 성장과 붕괴가 방아쇠가 된 것이다. 유베날리스의 풍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꼬집었다. 유베날리스의 빵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제국의 위정자들이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실시한 곡물의 무상급식을 말하고, 서커스는 로마시민들의 눈을 퇴폐적인 오락으로 돌려 실정을 속이려는 로마제국 위정자들의 정치적 수단을 대변한다.
작금의 우리나라도 국가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어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저소득층 가구와 고소득층 가구는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한 소득층에 머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고, 중위소득 가구의 경우에는 고소득층으로의 상향이동보다 하향이동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계층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소득계층의 고착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중산층 붕괴와 양극화 현상의 원인으로 작용해, 우리 경제사회의 활력과 지속 가능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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