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국가 경쟁력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은 수월성과 평등성이란 이념이 서로 대립하고 공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교입시 과열로 인한 부작용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교평준화가 1974년 서울과 부산을 필두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고교평준화는 교육조건, 학교 간 시설, 교사·학생의 질적 수준의 대등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고교평준화 제도는 중등교육이 시장원리에 따라 지나치게 경쟁을 부추기는 것을 막고, 교육을 사유제가 아닌 공공재로 간주하여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교 평준화는 현재까지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다.

한 국가의 기술·정보 수준과 지식 축적 정도는 그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의 질과 양에 좌우된다. 국경없이 전개되는 무한 경쟁의 4차산업혁명 시대에 과학, 기술, 예술, 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교육의 경쟁력과 정확하게 궤를 같이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창조적 소수자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수월성 교육은 자유로운 경쟁과 시장경제 원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교육의 다양성과 수월성의 추구는 개인차의 인정과 개인차에 맞는 교육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평준화와 평등성의 이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상산고 자사고 폐지 논란은 수월성과 평등론 충돌의 극단적인 형태이다. 상산고의 자사고 폐지에 찬성하는 쪽은 자사고는 그동안 입시위주 교육으로 입시사관학교라는 불명예만 얻었기 때문에 근본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은 자사고만 폐지한다고 해서 고교 서열화를 막을 수 없다며, 하향평준화는 우리 교육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속 강화와 범죄자의 형량을 높이는 ‘범죄와의 전쟁’이 범죄 발생률을 줄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 선포 후 오히려 범죄가 증가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범죄율을 낮추기보다는 범죄자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만 부추긴다.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육과 복지정책이 동반된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어야 한다. 자사고가 공교육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고 교육 평등론의 실현을 방해하는 주적이 아니다. 자사고 폐지 논란은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고 수월성 교육에 대한 갈증만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상산고 문제의 최종 결론은 정치권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교육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대안과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6월4일에 치른 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모의평가 응시자가 지난해보다 5만2천여 명이 줄었다. 충남 충북 대전 강원 부산 경북 지역은 당장 올해부터 고3 학생보다 신입생 모집 정원이 더 많다. 내년에는 사정이 더 심각하여 그 영향은 전국으로 확대된다. 규제와 통제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지난 10여 년 동안의 등록금 동결과 저출산으로 인한 정원 감소로 많은 대학들이 엄청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부실대학의 퇴출은 목전에 닥친 분명한 현실이다. 대책없는 지원으로 경쟁력 없는 대학을 연명시키기보다는 부실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 경우 설립자에게 출연금의 일부를 돌려줄 수 있는 퇴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살아남으려는 대학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하며 학생들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획기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원인은 신체에 이상이 있거나 외부 기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땀구멍을 막아 땀을 흘리는 환자를 치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땀구멍을 다 막을 수도 없지만 인위적으로 막으면 몸 자체를 망가뜨리게 된다. 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의 부실이 장기화되면 국가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을 이념 논쟁과 정치적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교육계와 정치권은 정파와 정견, 이념을 초월하여 범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의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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