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김인자

첫 결혼기념일이 이혼기념일이 된 후배의 변은/ 걷잡을 수 없는 남편의 바람기가 원인이었단다/ 30년을 한 남자와 살고 있는 나도/ 실은 한 남자와 사는 게 아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호시탐탐 친구의 애인을 넘보고/ 선후배에게 추파를 던지고 이웃사내에게 침을 삼켰다/ 단언하지만 이런 외식이 없었다면/ 나야말로 일찍이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결혼제도란, 한 여자가 한 남자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진/ 공소시효가 불분명한 합법을 가장한 희대의 불법 사기극/ 나는 달콤한 미끼에 걸려든 망둥어, 위장취업자, 아니 불법체류자,/ (중략)/자식에겐 만료가 없는 무보수 근로자/ 이런 근로조건에서 이 정도 바람 없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아닌 건 내가 아니라 후배일 터/ 나는 삼류영화,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봤고/ 후배는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다

- 계간⟪리토피아⟫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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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잘 살고 있는 장동건 고소영 부부의 비공개 결혼식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주례를 섰다. 이어령 선생은 주례사를 통해 ‘황금잔' 전설을 소개했다. 로마시대 한 제사장이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를 도둑맞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위로를 하자 제사장은 오히려 싱글벙글했다. 도둑이 딴 집에서 훔친 황금잔을 깜박하고 은수저가 있던 자리에 놓고 갔다는 것이다. 도둑이 들어 잃은 게 아니라 오히려 횡제를 한 형국이다. 그러면서 제사장은 “결혼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황제에게 말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자유와 시간 등 잃는 것이 있지만 대신 평생의 반려자인 ‘황금잔'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조금 잃고 더 큰 것을 얻는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은 이 예화를 들었다. 그리고 ’살림‘이란 말 이상으로 아름다운 말이 없다면서 일상의 반복을 일깨워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살림’이고, 결혼생활은 곧 ‘죽임’의 반대어인 ‘살림’이라며 주례사를 끝맺었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살림살이에 그대가 함께 있어 감사하고 아름답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을까.

부부는 오래, 아주 오래 함께 가야하는 소중한 인연이고 황금잔 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경우 은수저가 사라진 그 자리에 황금잔이 놓이지는 않는다. 황금잔은커녕 나무젓가락이 나뒹굴기도 하고 똥을 싸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 운명의 순간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값의 계산, 기회비용과 수익 계산이 잘 못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남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다. 나폴레옹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란 말도 있다. 어떤 결과든 현재의 상태는 지금껏 행한 태도의 결과이자 총합이다.

지난 시간을 촘촘히 재생해보면 누구나 허점투성이의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나는’ 결혼에서 살아남고, ‘너무 오래 교과서만을 탐닉한 결과’로 이혼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과 결혼, 이혼 문제는 선택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니다.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오래 참지 못하고 덮어주지 못해 헤어질지라도 서로에게 무례하거나 원한을 품지는 말아야할 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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