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향기 속에

발행일 2019-06-30 16:39:4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치자꽃 향기 속에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며칠간의 비로 날이 상쾌하게 바뀌었다. 신선한 공기를 코끝으로 들이켜며 새바람을 느껴본다. 차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향내가 전해온다. 가만히 살펴보니 빗방울을 머금고서 치자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잘 돌보아주지도 않을 길섶에서도 치자는 부지런히 꽃대를 밀어 올려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하였나 보다.

꽃 댕강 꽃도 새로운 달 새바람에 살랑대고 있다. 한 해의 딱 절반이 지나갔다. 바야흐로 뜨겁게 무르익어 갈 성하가 우리 곁으로 다시 큰 걸음으로 다가설 것 같다. 요란하게 내리다가 때로는 조용하게 뿌리던 비가 어느새 산봉우리를 아스라이 감싸 안는 안개를 데려왔다. 자작자작 속삭이던 빗소리를 대신한 산안개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 폭의 수묵화로 몸단장을 한 산세가 일시에 정적 속에 들었다. 가만히 내려앉은 안개 속을 잠시 걸어보다가 길 정중앙에 섰다. 지금, 이 순간 즉시 행복하기로 마음먹자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새날을 기쁘게 맞으리라.

새 깔깔이로 여름이 활짝 열렸다.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달이다. 뜨거울 날과 더불어 가슴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새기며 새로운 각오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온전한 하루를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출렁이는 파도와 파란 바다를 떠올리며 다가올 휴가와 아직 못다 마무리한 지난 계획을 다시 잘 살피고 맞추어서 충만하고 알찬 하루하루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문득,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힘이 센 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닙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입니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꿔보십시오. chance(기회)가 되지 않습니까? 변화 속에 반드시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더운 여름이 다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익어갈 무렵이면 또 새로운 인연과 알차게 엮은 결과들이 우리 곁에 흐뭇한 표정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눈만 뜨면 달려 나가던 직장에서도 한 해의 중반이 넘어서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새로운 규칙과 규정을 정해 새 단장을 하였다.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겨서 진료를 시작하고 모든 기록을 그때그때 마무리하며 보안을 강화하여 하루를 충실히 살게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바쁜 아침이 더 바빠지게 될 터이지만,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여름날에 모든 직원이 새 마음으로 힘차게 움직인다면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더 편리하게 진찰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지인이 내게 물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 가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아느냐? “고 말이다. 일순간 머뭇거리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이윽고 답을 하였다. 하나는 자식을 낳아서 대대손손 핏줄을 잇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내가 남긴 기록이라며 힘을 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울고 웃고 사랑하고 살면서 나이 들어 늙어 갔다는 것은 바로 그가 남긴 기록이 말해주지 않으랴. 그러니 하루하루 우리가 한 것에 대한 흔적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할 것 같다. 병원에서는 진료기록부가 정말 중요하지 않던가. 작가가 책을 한 권씩 내는 일은 영혼의 집 한 채씩을 지어 나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더위에 지쳐 까칠해진 얼굴 표정을 지을지라도 애정을 담뿍 담아 한마디 위로의 말을 글로 적어서 내가 만나는 인연에 건네주노라면 삶의 무게로 무덤덤해진 일상에도 활기를 되찾아 신나게 살아갈 힘을 얻지 않겠는가.

문득 치자 향내가 묻어나는 시가 입가에 맴돈다.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은/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것일 테지요/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모든 사람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그가 지는 향기를/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설렐 수 있다면/​/…중략…//우리의 삶 자체가/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

뜨거웠던 나날들을 떠올리며 왕성한 생명력으로 펄떡여야 할 본격적인 여름을 재촉하는 달, 7월이다. 맑고 푸른 바다의 향기, 신선하고 향기로운 산의 내음을 가끔 음미하며 늘 행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